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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B030205
지역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택희

“서리하러 오던 놈들은 원정동이라는 곳에 사는 놈들이 거의 다였어. 그 동네 놈들이 많이 짓궂었는데….”

부천에는 복숭아밭이 얼마나 많았는지 현재 17사단 자리부터 부천공고까지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버들캠프장을 지나서 극동아파트까지 사방을 둘러서 넓게 퍼져있었는데 계언덕에서 내려오다 보면 조마루, 옛날의 사오천이라고 하는 곳에서부터 소명여고 뒤편, 신일교통에서 지금의 우신교통이 있는 곳까지 전부 복숭아밭이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부천농고 학생들이 복숭아밭으로 실습을 나갈 정도였다고 하니 굉장히 큰 규모였던 셈이다.

규모가 컸던 만큼 복숭아 서리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일부 짓궂은 남학생들은 노지 복숭아가 아닌 일반 복숭아 밭에서 서리를 하기도 해 과수원 주인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당시 서리하러 오던 놈들은 원정동이라는 곳에 사는 놈들이 거의 다였어. 그 동네 놈들이 많이 짓궂었는데, 거기가 지금의 원정초등학교 있는 곳이지. 그러면 그때부터 따는 자와 감시하는 자만 남는 거야. 그럼 나는 원두막에 올라가서 감시를 하는데 지금이야 후레쉬(손전등)이 기능이 좋지만 그때는 기역자로 된 군대에서 쓰는 후레쉬가 있었다고. 그럼 그거 하나 가지고 계속 복숭아밭을 여기저기 비추는 거야. 그러면서 감시하는 거지.” (민동훈·윤용보·신재칠, 오정초등학교 25회 동창, 1947년생)

마을 전체가 복숭아 향으로 가득한 복숭아 수확 철이 되면, 복숭아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복숭아 수확에 정신이 없었다. 한편에서는 달콤한 복숭아를 맛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과수원을 지키는 사람들과 경쟁하듯이 감시의 눈을 피해 서리를 하곤 했다. 지금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주변 마을 원정동에서 서리하러 왔던 남성들은 서리꾼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많은 서리를 했다고 입을 모은다.

[정보제공]

  • •  민동훈·윤용보·신재칠(오정초등학교 25회 동창, 194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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