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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C020101
지역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상원

부천 경제개발 최대의 수혜자 춘의동

오랫동안 춘의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청주한씨 한기원 씨는 춘의동 지역이 대부분 넓은 들판으로 농사짓기 좋은 비옥한 평야 지대라 사람이 살기 좋은 지역이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러한 증거들은 문학작품 속에서도 나타나는데 박범신 작가의 소설 『나마스테』 속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 있다.

“부천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춘지봉은 옆으로 누운 여인의 곡선처럼 흘러온 춘의산(春宜山) 남봉인데 그 전망이 뛰어나 일찍부터 부천은 물론 소사 김포 부평의 선비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열던 곳이다. 부럭벽을 쌓고 기와를 얹은, 그래서 겨울엔 외풍 때문에 방 안에서도 코끝이 얼얼한 우리 집은 우중충한 공장 사이의 골목길을 한참 올라가야 되는 춘지봉 아래 첫 집이다. 그나마 우리 집 아래의 공구공장에 땅을 이미 팔았으므로 공장이 신축될 예정인 장마 직후까진 떠나야 할 곳인데...”

작가의 표현은 참 아이러니하면서 정직하다. 봄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춘지봉은 역설적이게도 시커먼 공장연기와 대조되어 더 아름다움을 발한다. 예로부터 아름다운 초록물결이 넘실거리던 자연마을 춘의동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되면서 고도성장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서울, 인천 등 대도시의 지가상승은 지역 내 소규모 임대공장의 운영을 더욱 어렵게 했다. 이 때문에 서울-부천-인천을 축으로 하는 경인공업지역에 터를 잡았던 기업들이 외곽 농촌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게 되었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도시가 부천 겉저리였다.

“공장은 팔구십 년대. 그 때 막 들어왔어요. 세 얻어서 조그맣게도 하고 커다란 공장도 들어오고 했어요. 남동공단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부터 95년 정도에요. 백시멘트 자리는 새로 삼보판지가 들어오기도 했는데 횟가루가 많이 나는 공장들은 충주로 이사했어요. 그래도 여기 웬만큼 큰 공장들 여러 개 있지요. 땅만 사놓으면 막 오르니까 있는 사람들은 조그마한 공장하면서 터 잡아 놓고 그랬지.”(이정웅, 겉저리 주민, 1939년생)

현재 춘의동원미동과 더불어 신시가지 중심부에 있으며 신흥정밀, 낫소, 주식회사 프로비타 등 대기업체와 금평산업, 동산모노산업사 등 중소기업체들이 병존하고 있다. 이처럼 겉저리를 차지한 공장과 기업들은 허허벌판이었던 농촌지역에 많은 변화를 야기하였으며 새로운 사회, 경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왔다.

[정보제공]

  • •  이정웅(겉저리 주민, 1939년생)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3.10 내용 중 기관명 변경 삼협전자공업->주식회사 프로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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