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C03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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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상원 |
청주한씨들의 소박한 유산
부천 겉저리는 씨족촌이다. 예전부터 작동에는 민씨, 여월동에는 원씨와 남씨, 삼정동에 박씨, 약대동의 김씨와 이씨, 그리고 겉저리에는 한씨들이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았다. 춘의동 당아래 토박이 청주한씨 한기원 할아버지는 그의 가족이 당아래에 들어오게 된 춘의동에 터 잡게 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여기는(당아래) 한씨들이 많이 살았어요. 원래 우리 조상들이 춘의동 춘의사거리에 살았어요. 그러다 애들 장가들이고 세간 낼 적에 하나씩 세간내서 이리로들(당아래) 올라 온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세간내서 이리로 올라 오셨어요. 돈 좀 모아가지고 논 사고 밭 사고 그래가지고 그냥 이만큼 사는 거예요. 내가 4대인데 지금 손자인 6대까지 이 집에 살고 있어요.”(한기원, 당아래 주민, 1932년생)
그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투박한 손으로 짚을 꼬고 엮으면서 들려주는 ‘짚’ 이야기다. 굵은 마디가 불거진 검은 손이 짚을 비비고 꼬아 만든 짚신은 투박하지만 빈틈이 없다. 보잘 것 없던 짚 한 줌이 어느 결에 손자를 위한 소박한 짚신 한 켤레로 태어났다. 시골에서 짚은 그리 귀한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값진 존재였다. 할아버지는 ‘어디 잘 맞는지 볼까?’ 하고 웃음 지으며 짚신을 신고 좋아하는 손자 엉덩이를 토닥였다.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 할아버지가 집에서 짚신을 잘 삼았어요. 짚신을 시장에 가지고가면 제일 먼저 팔고 들어오셨어요. 그리고 우리들한테도 일 년에 하나씩 삼아 주셨다고. 그걸 신으니까 가볍고 좋더라고. 근데 비만 오면 그냥 물이 새들어 오는 거야. 그래 그놈의 걸 끌고서 학교에 가다가 어떤 때는 짚신을 꿰서 들고 책보하고 그냥 메고서 맨발로 다니고 했어요. 또 겨울에 나막신을 신으면 발에 눈이 붙어요. 그러면 발이 삐끗삐끗 별짓 다 하거든, 그래 얘 이놈의 것 못하겠다. 그것도 꿰어 들고서 그냥 맨발로 뛰는 거야, 허허.”(한기원, 당아래 주민, 1932년생)
한기원 할아버지가 짚신이며 나막신을 신고 뛰어놀던 춘의동은 그린벨트로 묶이게 되면서 천혜의 자연마을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전부터 그린벨트 해제 지역이 늘면서 그린벨트에서 풀린 집단취락지구가 부상하고 있는 추세다. 땅값이 오르면서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땅값이 앞으로도 더 오를 가능성이 큰데다 각종 개발사업의 채산성 또한 높은 것이라는 판단 하에 동네가 들썩이고 있다. 수 십 년 동안 그린벨트에 묶여 개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마을 주민들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한기원 할아버지도 마을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처하게 된 어려움을 토로하셨다.
“동네를 그린벨트로 30년 동안 묶어 놨다가 인제 풀어주는 거야. 이제 와서 마음대로 풀어놓고는 공시지가를 막 올리니 사람들이 힘들죠. 그 동안 마을 사람들은 평당, 아니 일배당 이만 오천 원씩 냈었는데 지금 25만원 35만원까지 가요. 한 열 배가 오른 거죠. 별안간 공시지가를 막 올리면 우리 어떻게 살라고 그러느냐, 우리 세금 내려면 땅 팔아야지 이거 못 낸다고 했지."(한기원, 당아래 주민, 1932년생)
정부의 대책 없이 높은 공시지에 부아가 치밀어 오른 한기원 할아버지는 집 앞에 넓은 공터에 세운 물류창고 두 개 동도 큰 아들에게 다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나마 할아버지는 조상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잘 관리한 덕에 이처럼 아들 손자들까지 넘겨줄 재산도 장만할 수 있었다. 마을에 있는 천 사백 평짜리 논밭도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물려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옛날에 동네에 부자가 살았는데 그 부자가 땅을 팔 때마다 조금씩 사 두어 이루어 놓은 의미 있는 유산이다. 하지만 정작 할아버지가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유산은 ‘짚신 한 켤레’가 주는 가르침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잘 엮고 다듬어서 값지게 만드는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거야. 아무리 돈 있어도 소용없어. 자식들이 돈을 가지고 지낼 놈이 되어야 주는 거지. 돈 아무리 줘봤댔자 이거 공돈 생긴 건줄 알고, 그냥 휘두르고 나서 금방 거지가 된다고. 얼마 전에 우리가 남양으로 시향 모시러 가는데 한 집안에 출입금지 인줄이 쳐 있더라고. 그 집 양반이 수원에서 한약을 했는데 그 양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 집 삼남매가 아버지 이름으로 돼있던 중종산까지 죄다 팔아 치운 거야. 그러더니 집안이 결단이 난거지. 자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돈이 다가 아니라니까.”(한기원, 당아래 주민, 1932년생)
할아버지는 한솥밥을 먹고 자란 형제간이라도 재산 상속 다툼으로 툭하면 서로 송사를 벌이고 부자간에도 갈등이 생긴다면서, 마을에 그린벨트 해제 바람이 불면 마을 사람들 간에도 마음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크게 걱정하셨다. 자칫 당아래의 반짝이는 초록빛이 사람들의 이기 속에 바래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도 하지만, 짚신 한 켤레의 추억을 고이 간직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한 마을의 평화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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