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D02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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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웅규 |
“경인국도변 복숭아 좌판이 언제부터인가 하면 정확히는 몰라도 70년대 초부터 활성화가 됐던 걸로 기억해요.”
가난했던 1970년대. 학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풋과일은 여느 만찬에 못지않은 훌륭한 먹을거리였다. 특히 머리에 광주리를 인 아주머니가 산지 복숭아를 한 가득 담고 팔러 다니면 10원을 내고 열 개씩 사와서 우두둑 소리가 나게 씹었다. 이 시절을 살았던 부천 사람들에게 복숭아의 달콤 쌉쌀한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 내가 송내동에 왔을 때 송내 1동에는 2층 집들이 있었고 도로는 2차선 경인국도가 있었어요. 진로소주 앞에 2층집에 가면은 타래박삼 샘물이 하나 있어 동네 사람들이 그 물을 먹고 살았죠.
내가 집사람 힘들까봐 도르래를 걸어 물을 긷곤 했는데 당시 여기에는 복숭아가 무지하게 많았었어요. 그 때 요기 내가 있는 데가 4차선이고 이쪽 삼정공단 가는 길은 2차선이었는데 사람들이 무척 (많이) 와서 따 먹고 갔죠.”(이명곤, 송내동 토박이, 1953년생)
특히 경인국도변으로는 복숭아 노점상들이 밀집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저희도 복숭아 농사를 지었어요. 복숭아 짓던 본가도 아직 있어요. 복숭아밭이 있다는 게 아니라 옛날 복숭아밭이 있던 터에 집이 있다는 얘기예요. 당시에 솔안말이 복숭아가 유명하기 때문에 복숭아밭이 참 좋았어요. 지금 말하면 부천남부경찰서 올라가는 입구까지 경인국도 변으로 복숭아 노점상들이 불을 켜놓고 아주 쫙 깔렸었어요. 그게 정말 명물이었어요. 전기 불을 끌어서 노점상들이 천막을 쳐놓고 복숭아를 쫙 파는 그런 것이 아주 장관이었어요. 보기도 참 좋았어요.”(박순규, 부천새마을금고 이사장, 1952년생)
산지에서 직접 재배한 복숭아를 도로변에서 팔고 사는 광경은 사람 사는 냄새가 넘쳐났다. 깎아주기 흥정뿐만 아니라 넉넉한 인심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이다. 차를 가지고 와서 물건을 구경하거나 시식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차 가지고 오가는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복숭아를 사가고, 사먹고 그건 정말 잊지 못할 하나의 장관이었어요. 여기서부터 부천경찰서까지니까 거리가 한 2㎞ 되거든요. 경인국도변 복숭아 좌판이 언제부터인가 하면 정확히는 몰라도 70년대 초부터 활성화가 됐던 걸로 기억해요. 물론 그전에도 조그맣게 있기는 있었어요. 좌판을 하시는 분들은 깡시장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직접 농사지은 물건을 가져다 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물건이 깡시장으로 가서 다시 나오는 형태이니까 거의 깡시장에서 물건을 가져와서 하시는 분들이었죠.”(박순규, 부천새마을금고 이사장, 1952년생)
특히 주말이 되면 인근 서울의 구로공단, 가리봉공단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많이 찾아왔다. 새콤달콤한 복숭아는 지금이나 그 때나 인기 만점이어서, 그 시절 공단 월급날 저녁만 되면 복숭아 도매시장은 사람들 어깨가 부딪칠 정도였다고 한다.
“복숭아철만 되면 구로공단, 가리봉공단에서 엄청나게 많이 와요. 이곳에 찾아오는 처녀, 총각들이 엄청났죠. 하여튼 철만 되면 쌍쌍이들 엄청나게 왔어요. 그때만 해도 여기서부터 부천시 가는 데까지 국도 양쪽으로 복숭아 장사들이 쭉 진열해서 팔았죠. 길에서 한 열 발짝만 움직이면 복숭아를 따먹을 수 있었어요. 나무가 길 가까이 있었으니까요.”(이명곤, 송내동 토박이, 1953년생)
송내동 자체가 워낙 복숭아가 많이 수확되기도 했지만 거리 곳곳에서 복숭아를 진열하고 판매하는 장관을 이뤘기 때문에 젊은 남녀 데이트코스로도 그만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복숭아는 단순히 먹는 과일로서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제공하는 역할도 했다.
복숭아 노점이 펼쳐진 거리는 인심도 훈훈했다. 요즘에는 일부 많은 좌판들이 몰려있는 지역을 지나가다 보면 경쟁적인 호객행위를 통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많은 좌판들이 몰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호객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옛날에는 그런 게 어디 있나요. 바로 경인국도변이니 차들이 오가면서 서는 거지. 차들이 알아서 서서 사고 그랬죠. 서로 싸우는 것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다들 같은 동네고 옆 동네기 때문에 서로 다 아는 분위기였거든요. 물론 다른 곳에서 와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요즘처럼 싸우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 전만 하더라도 시골이고, 사람들 인심이 그렇게 야박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툼은 없었어요.”(박순규, 부천새마을금고 이사장, 1952년생)
어려웠던 시절 달콤한 휴식이 되었던 경인국도변 복숭아 시장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훈훈한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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