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D02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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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웅규 |
“산 위에 올라가서 쥐불놀이도 하고 복숭아서리 하고 그런 것들은 저희 때는 흔해서 재미가 없었어요.”
뭐니뭐니 해도 복숭아의 매력은 서리를 해 먹는 재미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땅히 군것질거리가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밭모서리 복숭아 나뭇가지에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복숭아를 보고 군침만 삼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채 익기도 전 풋내가 날 때부터 시작된 복숭아 서리는 한 여름 내내 계속 됐다.
한여름 더위에 낮잠을 즐기느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틈을 타서 서리꾼들은 개울과 논두렁을 살금살금 타곤 했다. 한 녀석은 주인의 집 앞에서 망을 보며 수신호를 하고 행동 조는 잽싸게 달려들어 복숭아를 손에 잡히는 대로 따서 뛰었다. 단 몇 분이면 작전개시 끝이었다.
빈번한 서리에 견딜 수 없는 농부가 원두막을 지어놓고 감시를 늦추지 않았지만, 주인이 잠든 밤을 타서 몰래 작업을 하기도 했다. 주인이 잠든 기색이 보이면,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원두막 근처로 접근하여 서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복숭아가 흔했던 이곳 아이들에게 복숭아서리가 그리 큰 재미를 주지는 않았던 듯하다.
“복숭아는 흔했거든요. 여기는 눈만 뜨면 복숭아였기 때문에 우리가 서리를 간다는 것은 사실상 많이 없었지요. 왜냐하면 모두들 동네사람들이라 가서 복숭아 달라고 하면 먹으라고 그랬고 원두막에 가면 하나씩 주고 그랬으니까요. 우리가 일부러 남의 것을 탐해야 겠다고 서리하러 간 적은 없어요.”(박순규, 부천새마을금고 이사장, 1952년생)
다른 동네에서는 아이들에게 큰 인기인 동시에 맛 나는 복숭아를 먹을 수 있는 기회였던 서리가 이 곳 송내동의 아이들에게는 흔한 복숭아기에 크게 매력적인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대신 길가에 떨어진 복숭아를 먹고 나서 그 씨를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장난스럽게 던지며 놀았던 것이 더 큰 즐거움이었다.
산지복숭아는 다른 과일과 달리 사람이 반을 먹고 벌레가 반을 먹는 일이 대다수였다. 독한 약을 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벌레가 먹지 않고 온전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벌레가 먹었다고 아까운 것을 그냥 버릴 수도 없었기에 아이들이 바닥에 떨어진 복숭아를 먹기도 하고 놀이기구로 삼아서 배고픔과 심심함을 달랬다.
“우리 재미라고는 장마가 질 때 복숭아가 많이 떨어지거든. 그렇게 떨어진 복숭아를 주워 먹고 나서 어린마음에 장난 논다고 개울가에 빨래하는 아줌마들한테 내던졌어요. 떨어진 거 보면 돌 아니고 복숭아니까 그렇게 야단은 안쳤지요. 크게 놀이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장난이었으니까요.”(박순규, 부천새마을금고 이사장, 1952년생)
복숭아서리로 어느 정도 배고픔을 채우고 나면 아이들은 더 재밌는 놀이를 찾아 나섰다. 특히 쥐불놀이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다.
“우리 어렸을 적에 그렇게 대표적인 놀이가 많이 없었지요. 대보름 때 싸움 하는 것. 불 싸움 하는 거 있잖아요. 산위에 올라가서 하는 쥐불놀이가 복숭아서리보다 재미있었어요.”(박순규, 부천새마을금고 이사장, 1952년생)
아이들은 하루 종일 산과 들을 쏘다니며 산열매도 실컷 따 먹고 동네를 휘젓다가 사방이 어둑해지면 저녁에 있을 깡통 불놀이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대청마루 밑에 기어들어가 깡통을 주워 대못과 망치를 이용해 깡통에 구멍을 내고는 철사 줄로 연결하면 쥐불놀이 깡통이 완성된다. 이때 대못을 깡통에 대고 망치로 두들기다가 힘 조절을 잘 못하면 통이 찌그러져 못쓰게 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했다고 한다. 깡통이 준비되면 왜낫을 들고 산으로 올라간다. 깡통 불놀이에 필요한 관솔과 솔방울을 따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산에 올라가 이미 부러져 나간 소나무의 가지를 골라 낫으로 쳐서 관솔을 마련한다. 잘려나간 가지 끝에는 송진이 많이 응어리져 있는데, 이 송진이 화력을 높여주어서 깡통 불놀이에 최적격이었다.
해가 떨어진 후 아이들이 한두 명씩 논으로 모여들면, 저마다 깡통에 관솔과 솔방울을 넣고 돌렸다. ‘탁’소리를 내면서 논바닥에 떨어질 때 흩어지는 그 불꽃들을 바라보며 아이들은 소박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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