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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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梅田面萬歲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9년 3월 11일 - 매전면 만세 운동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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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19년 3월 12일 - 매전면 만세 운동 전개 후 해산 |
발단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3·1 운동 발생 |
발생|시작 장소 | 매전면 만세 운동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
성격 | 독립운동|항일 운동 |
관련 인물/단체 | 김집이|노이만 |
[정의]
1919년 3월 11일과 12일에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운동.
[개설]
3·1 운동 당시 경상북도 청도군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걸쳐 모두 7회의 크고 작은 만세 시위운동이 발생하였다.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관공서 습격, 일본 경찰 구타, 일본인과의 충돌, 자위회 공격 등 점차 격렬한 무력시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만세 시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청도군 지역의 만세 시위운동은 일찍이 근대적 민족의식을 갖춘 청년 지식인들이 독자적으로 만세 시위를 계획하거나 주도하였고, 나아가 농민 및 노동자 계층이 참여함으로써 대중적인 시위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경과]
1919년 3월 11일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서 김집이(金集伊) 등은 이원당(李元塘)의 조상(祖上) 제전(祭典)에서 각처의 만세 시위운동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노이만(盧二萬) 등 7명을 규합하여 이날 밤 독립 만세를 불렀다. 다음날 3월 12일 밤에도 같은 마을 이동기(李東基)의 집 앞에서 독립 만세를 불렀다.
[결과]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서 독립 만세를 불렀던 주동자 5명은 매전면 주재소에 의해 검거되었고, 그 중 노이만은 대구 지방 법원에서 보안법 제7조 위반으로 징역 4월에 처해졌다.
[의의와 평가]
경상북도 청도군의 만세 시위운동은 서울이나 평안도 등 각처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의 영향을 받아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이 청도군 매전면이다.
또한 당시 일제 경찰의 극비 상황 보고 문서에 의하면 매전면 만세 운동에 ‘주민 100여 명이 독립 만세를 고창(高唱)’하며 참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사실상 매전면 전 주민이 참가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