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C01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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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숙 |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입구 샘거리에는 여러 기의 고인돌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전에는 훨씬 더 많았는데 도로를 내고 주유소를 지으면서 상당수가 땅 속에 파묻혔다고 한다. 경주최씨 삼효각을 둘러보고 마을로 내려가는 도중에 최대기[1938년생] 씨가 그 중 한 개의 고인돌을 가리키며 말바우와 되바위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었다.
[진나라 장수가 괴어 놓은 두 개의 바위]
말바위와 되바위 이야기는 ‘장수굴’과 ‘관바위’라는 이야기에서 나온 내용이라고 한다. 장수굴은 어른 15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굴이고, 관바위는 ‘도사암’이라고도 부른다. 최대기 씨의 이야기는 “옛날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었다.
때는 백제시대 초기, 중국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축성할 때 최씨 성을 가진 장수에게 바위를 수집하여 오라고 명을 내렸다. 최씨 성을 가진 장수가 현재의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덕림산에 와서 열심히 바위를 수집하여 말에 싣고 막 길을 재촉하는데 축성 작업이 완료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장수는 쓸모없게 된 바위를 내려놓았는데, 그곳이 바로 마래마을이었다. 장수는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주변의 산세가 범상치 않으므로 자신이 내려놓은 바위 밑에 굴을 파고 살면서 주변에 있던 바위를 괴어 놓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말바위이고 다른 하나가 되바위라는 이야기이다.
최씨 성을 가진 장수는 힘도 세지만 지혜가 있어 곡식의 분량을 가늠하기 위해 바위 위에 홈을 파 놓았는데, 말바위는 1말이 들어가고 되바위는 1되가 들어간다고 한다. 또한 말바위는 그 네 귀가 정확한 동서남북을 가리키기 때문에 지관들이 나침반이 고장이 나면 이 말바위의 네 귀를 보고 남북 방향을 맞추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옛날 마래마을 사람들은 말과 되의 분량을 그 바위에 준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최씨 성을 가진 장수는 장수굴에서 약 10년간 살다가 떠나면서 그 주위의 바위를 다시 괴어 놓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말바위와 되바위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용량의 척도가 되기도 하고 방위의 기준이 되기도 하여, 이름 그대로 사람들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바위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고향 사랑]
최대기 씨는 “고인돌이라는 것은 옛날에 장수들이 팽이를 치듯이 돌을 모아 두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한 곳에 모여 있게 된 것”이고, “말바우와 되바우는 곡식을 담아 그 양을 재는 ‘말’과 ‘되’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전윤오 씨가 끼어들어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말바우와 되바우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말이다. 전윤오[1938년생] 씨는 “말바우와 되바우는, 예전에 먹을 것이 없던 가난한 사람들이 봄에 쌀을 빌려 먹고 가을에 되갚을 때 말이나 되 크기가 달라서 자꾸 시비가 생기자, 사람들이 한 말 한 되에 딱 맞게 바위를 파 놓고 그곳에 와서 곡식을 계량한 데서 연유된 것”이라고 하였다.
누구의 이야기가 맞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전설이라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기억과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대기 씨와 전윤오 씨가 전하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전하는 산과 들, 바위에 관한 이야기 속에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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