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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을 맺고 마을을 이룬 이웃사촌 작동에는 오래전부터 여흥민씨, 청주한씨, 해주정씨가 세거해 왔다. 비록 지금 구 작동에서도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지만 이들은 작동의 토박이로서 마을 운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작동의 여흥민씨들은 경숙옹주와 여천위 민자방의 혼인으로 여흥민씨 여천위파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여흥민씨가 작동에 정착하게 된 내력에 대해서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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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가 팔리지 않으면 오목교[목동]까지 들고 가서 팔기도 하고 그랬지. 오목교 둑방 너머 집들이 많았으니까.” 부천은 대표적인 여흥민씨 집성촌으로 많은 여흥민씨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공간이다. 그 중 한 명인 민경재 할아버지는 부천 복숭아에 대한 즐거운 기억들을 몇 가지 꺼내 놓으셨다. 특히 복숭아 서리는 고픈 배를 채우고 동네 친구들과 추억을 남기는 수단이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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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아이들이 서리를 하러 오면 콩깍지들이 부스럭하고 소리를 낸다고요. 그걸 큰형이 용케 듣고는 부리나케 쫓아가곤 했죠.” 작동에는 봄이면 온 천지가 분홍 복사꽃과, 흰 배꽃, 사과꽃으로 꽃 세상이 된다. 사시사철 자연송이, 배, 사과를 선사해 주는 천혜의 자연마을. 자연먹거리에 의존해 왔던 이 마을은 한 해 농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산 비탈길이 많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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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천자문을 가르치실 때 엄하게 가르치셨는데 열심히 하거나 잘 했을 때는 빨간 대추랑 비슷하게 생긴 사탕을 주셨지.” 민경흥 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는 당시 금부도사라는 높은 관직을 지내셨던 분이셨다. 그 때문에 어려서부터 손자들 교육에 철저하셨으며, 직접 공부를 가르치시기도 하였다. 민경흥 할아버지도 증조할아버지께 천자문 등의 교육을 받았으며, 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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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쇠패가 가서 놀고 하면은 그놈(북한군)들이 총 메고 논바닥에 와가지고 꽹과리를 마구잡이로 뺏어가고.” 한국전쟁 당시 작동은 전쟁 초기에는 발견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발견된 마을이다. 그런데 발견 당시 두레패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그와 관련된 악기들이 많다 보니, 당시 귀했고 쓰임새가 많았던 꽹과리와 징 등을 북한군이 보이는 대로 강탈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뺏기지 않으려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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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우물고사를 지낼 때 마다 상쇠패들이 몰려와서 신명나게 노는 거야.” 작동은 예로부터 다른 마을보다 두레패가 유명했던 지역이다. 흥겹고 신명나는 한마당인 두레패들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한마당 하면 잔치가 벌어지는 것 같이 시끌시끌했다. 지역원로이신 이창갑 할아버지(지역원로, 1941년생)는 비록 재주가 없어서 두레패를 하지 못하셨지만 그 흥겨웠던 순간만은 소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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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한 것을 가지고 어디 가서 파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도둑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옛날 경인선을 달려온 열차가 소사역에 들어서면 차창 밖에서는 으레 행상들이 알이 굵고 먹음직한 복숭아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치켜들며 큰 소리로 ‘복숭아 사려’를 외쳤다. 입안에 가득 고여 오는 상쾌한 단맛, 부드러운 육질이 주는 미각의 유혹을 못 이겨 승객들은 너도나도 복숭아를 샀고,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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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두레패가 신명나게 한판 벌이면 정말 흥이 나고 즐거웠지요.” 시골 마을에서 두레는 농사일의 어려움을 상부상조로 극복했던 가장 전형적인 공동체조직이었다. 두레박, 용두레, 두레 길쌈 따위에서 보이듯 두레 자체가 고유의 우리말인데 두레는 초여름에 조직을 정비해서 모내기가 끝나면 시원한 정자나무 그늘에 앉아서 두레를 이끌어나갈 일꾼들을 뽑았다. 집중적으로 김을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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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사발에 목청을 틔우며 시름을 달래주던 니나놋집 교통편이 좋지 않았던 시절, 작동 주민들은 나무로 만든 사과박스에 과일과 채소를 잔뜩 싣고서 화물차를 부르거나 소마차에 복숭아를 싣고 시장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장사가 잘 되는 날이면 사람들이 꼭 거치는 곳이 있었다. 생활이 고단하고 어려웠던 시절, 해가 떨어지고 땅거미가 짙어질 무렵이면 생활과 일에 찌든 노동자들이 피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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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밭을 크게 하던 집의 딸이 있었는데 굉장히 예뻤어. 여학생이 버스에서 내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더라고.”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주인공이 복사골에도 있었다면? 동네 장난꾸러기 삼총사는 오래 전에 있었던 가슴 떨리는 이야기를 고백했다. “예전에 복숭아밭을 크게 하던 집의 딸이 있었는데 굉장히 예뻤다고. 내가 군대 가기 전이니 21살 정도 되었을 때지. 하루는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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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자유시장 건너편이 깡시장이 있던 곳인데 그곳에서 과일이 경매를 통해 도매로 팔려나갔어.” 부천의 동쪽 끝, 서울과의 경계를 이루는 신월산 서쪽 기슭에 깃든 동네가 까치울이라고 불리는 작동이다. 한적한 산골이었던 이곳에도 큰 길이 나고 주택단지들이 들어서서 더 이상 한촌이 아니지만 그래도 숲이 우거진 산에 가깝고 밭이 많이 남아 있어 전원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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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집에서 한 5㎞ 정도 되는 곳에 있었는데 뭐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으니 무조건 걸어서 학교를 다녔지.” 과거 부천은 교통체계가 발달되지 못해서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교통수단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작동은 부천에서도 멀리 떨어진 외진 마을이라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 더욱 어려움이 많았다. 어린 학생들도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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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끼리 의리가 좋아서 싸우고 다투는 일이 거의 없었어. 작은 동네다보니 서로 내 꺼 네 꺼 우기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 작동은 고만고만한 이웃들이 도란도란 모여 사는 평화롭고 인간적인 마을이다. 마을 골목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학동들이 뛰어놀고, 들에 나갔던 남정네들이 지게지고 고샅을 들어오며, 굴뚝에선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를 것 같은 정겨운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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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흥민씨 세 개 파가 이곳에 자연스럽게 모였는데 촌수는 좀 멀었죠. 그 자손들이 아직까지 이곳에 정착하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경숙옹주님이 작동에 머무신 것이 돌아가시기 20년 전쯤인 것 같아요. 이후 5대손 안팎의 후손들이 시차를 두면서 이곳으로 왔지요. 여흥민씨 세 개 파가 이곳에 자연스럽게 모였는데 촌수는 좀 멀었죠. 그래도 그 자손들이 아직까지 이곳에 정착하면서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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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 토박이가 지켜낸 은둔의 땅 ‘웰컴 투 작동’ 작동에 들어서는 초입부터 오지의 향취가 짙게 묻어난다. 곳곳에 도로공사 및 제방공사를 하고 있어 다소 어수선하기도 하지만 금세 깊은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원초적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있는 펜션과 식당가들을 지날 무렵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이처럼 작동을 찾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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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옹주께서 돌아가시면서 작동 땅을 하사받았거든요. 그래서 선산을 이곳으로 모시게 됐어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부천 또한 귀중한 역사를 담고 있는 소규모 부락을 재발견하였다. 작동, 일명 까치울이라고 불리는 마을은 비록 규모면에서는 작지만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다섯 번째 딸 경숙옹주와 그녀의 배필인 여천위 민자방의 일가가 집성촌을 이루고 생활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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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패는 농악이라고 하는데 꽹과리 치는 사람이 대장이 되어서 신명나는 한마당을 펼치곤 했지.” 두레패는 부천, 그 중에서도 작동에서 유독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농악한마당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농악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작동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레패가 형성되었고, 마을에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두레패들의 신나는 한마당이 벌어지곤 했다. 두레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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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등학교는 북초등학교랑 비교가 되었는데 북초등학교는 순수 한국인학교였고 남초등학교는 일본인 중심의 학교였지.” 과거 부천에는 소수의 초등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남초등학교와 북초등학교는 서로가 가진 특성 때문에 유명한 학교였다. 그 이유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선생님들 때문이었는데 북초등학교는 순수 한국인들로만 이루어진 학교였던 반면에, 남초등학교는 선생님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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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까치가 날아든 마을 마을 사람들은 언제부턴지는 모르지만 작동을 까치울이라고 불러왔다. 흔히 까치가 많아서 까치울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지만 작동은 까치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온다. 신라의 화랑들이 활쏘기 경연을 벌이던 중 김유신이 쏜 화살을 날아가던 까치가 덥석 물고 이곳까지 날아왔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작동은 지역 면적으로는 매우 작은 마을이지만, 예로부터 왕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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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성씨[민씨, 정씨, 한씨]들의 주도로 마을 화합을 해서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았어요.” 작동은 세 성씨에 해당하는 적은 가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고 있는 작지만 유대감이 강한 마을이었다. 그래서 이 마을에 가면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젓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안다는 옛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공동체적인 삶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작동 안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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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나무 중간 중간에 거름을 주기 위해 큰 구덩이를 파서 인분을 받고 그대로 썩혀서 활용하곤 했지.” 뒷간과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작동 주민들은 이해하지 못할 말이다. 왜냐하면 깊은 산골짜기에서 농사를 짓는 데 인분이라는 천연비료만큼 농민의 근심을 덜어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뒷간 즉 변소는 둥그런 녹강(시멘트로 만든 원통의 못)이나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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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옹주들의 능묘가 쓰인 귀한 땅 작동 현재 성종의 다섯 번째 따님이었던 경숙옹주와 여천위 민자방의 묘는 현재 까치울초등학교 근처에 보존되어 있다. 경숙옹주 묘는 부천 지역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옹주들의 묘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묘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1988년에 발간된 부천시사는 작동을 ‘호암산이 에워싸고 벼리내가 흐르는 생기복덕(生氣福德)한 땅’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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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하러 오던 놈들은 원정동이라는 곳에 사는 놈들이 거의 다였어. 그 동네 놈들이 많이 짓궂었는데….” 부천에는 복숭아밭이 얼마나 많았는지 현재 17사단 자리부터 부천공고까지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버들캠프장을 지나서 극동아파트까지 사방을 둘러서 넓게 퍼져있었는데 계언덕에서 내려오다 보면 조마루, 옛날의 사오천이라고 하는 곳에서부터 소명여고 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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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포수가 계셔가지고 계양산에서 노루가 뛰었다고 산으로 잡으러 가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바람이 부는 날에는 작동마을에 가고 싶어진다. 바람이 불면 작동의 보리밭 초록물결이 더욱 일렁인다. 사실 보리밭에 대한 느낌과 의미는 세대별로 다르다. 현재를 사는 아이들에게 보리밭은 그저 신기한 풍경쯤으로 여겨질 법도 하나, 적어도 30년 전 보릿고개 시절을 겪은 세대들에게 넘실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