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한씨
-
경기도 부천시의 여흥민씨 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65년의 호적단자. 1865년 부평도호부 하오정면 작동에 거주하던 민행건(閔行健)의 호적단자이다. 당시 민행건의 나이는 53세였으며, 직역은 벼슬하지 않은 양반의 호칭인 유학(幼學)이었다. 여흥민씨가 부천에 정착한 것은 16세손인 민종원(閔宗元) 때부터인데, 이 문서에 호주로 등재된 민행건은 민종원의 12세손이다. 조선시대 호적대장...
-
사돈을 맺고 마을을 이룬 이웃사촌 작동에는 오래전부터 여흥민씨, 청주한씨, 해주정씨가 세거해 왔다. 비록 지금 구 작동에서도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지만 이들은 작동의 토박이로서 마을 운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작동의 여흥민씨들은 경숙옹주와 여천위 민자방의 혼인으로 여흥민씨 여천위파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여흥민씨가 작동에 정착하게 된 내력에 대해서는 또...
-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골짜기. 능안[陵內]이라는 이름은 능이 있는 골짜기[일명 능골] 안쪽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능안을 에워싼 골짜기는 여흥민씨와 청주한씨의 선산인데, 여흥민씨 족보에는 능안이 한자로 ‘능내(陵內)’라고 기록되어 있다. 능안을 ‘능안골’이라고도 부른다. 부천시 작동 142번지 일대로, 웃말 동쪽으로 길쭉하게 뻗은 골짜기였으며 서울로 통하는 길이...
-
조선 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문서(文瑞), 호는 궁와(窮窩). 밀양박씨 규정공파(糾正公派) 16세손으로, 아버지는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를 지내고 계양팔문장가(桂陽八文章家)에 속하는 박선(朴渲)이다.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이며, 3남 1녀 중 장남이다. 박규문은 어릴 때부터 도량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 일찍이 학문을 이루었고, 1699년(숙종...
-
부천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지어졌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유일하게 부천임씨가 있을 뿐이다. 다만 현재 부천과 가까운 곳인 부평엔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 된 이희목의 부평이씨가 있고, 희귀성인 부평 사씨(舍氏)가 있다. 조선시대까지 부천이 부평으로 불렸기 때문에 부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 부평이씨와 부평 사씨(舍氏)를 포함시킬 수 있을...
-
부천 경제개발 최대의 수혜자 춘의동 오랫동안 춘의동에 터를 잡고 살아온 청주한씨 한기원 씨는 춘의동 지역이 대부분 넓은 들판으로 농사짓기 좋은 비옥한 평야 지대라 사람이 살기 좋은 지역이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러한 증거들은 문학작품 속에서도 나타나는데 박범신 작가의 소설 『나마스테』 속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 있다. “부천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춘지봉은 옆으...
-
청주한씨의 집성촌 양지마을에서는 원미산으로 알려진 ‘멀미’의 제일봉우리인 장대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장대봉에서 아침 해가 제일 먼저 불끈 솟아올라 마을 이름이 양지마을이 되었다. 양지마을은 청주한씨들이 주로 사는 마을이고 가운데 당아래는 대흥기계나 대아정밀 등이 밀집해 있는 공단에 위치해 있었다. 너머 당아래는 부천종합운동장 근처로 흔히 고비골로...
-
“경숙옹주께서 돌아가시면서 작동 땅을 하사받았거든요. 그래서 선산을 이곳으로 모시게 됐어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부천 또한 귀중한 역사를 담고 있는 소규모 부락을 재발견하였다. 작동, 일명 까치울이라고 불리는 마을은 비록 규모면에서는 작지만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다섯 번째 딸 경숙옹주와 그녀의 배필인 여천위 민자방의 일가가 집성촌을 이루고 생활하는 공간...
-
일제강점기 활동한 부천 지역 출신의 정치인. 이유선은 1903년 11월 경기도 부평군 구산리[현 인천광역시 부평구 구산동]에서 아버지 이규환과 어머니 청주한씨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인천공립보통학교·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고향에 구산교회와 부천군 구산진영학원을 설립하였으며, 3·1운동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40년 귀국하여 부천시 심곡본1동[현 경인약국 자리]에...
-
경기도 부천시에 입향한 성씨. 입향성씨(入鄕姓氏)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 가문이 일정한 지역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입향성씨에는 입향조가 있게 마련인데, 입향조는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많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촌락사회, 특히 집성촌에서는 입향조를 정점으로 혈연공동...
-
경기도 부천시 작동의 청주한씨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고문서와 전적. 고문서 23점과 전적 8책 등 총 31점이 있다. 고문서는 1673년 한세보(韓世輔)[1648~1690]가 진사시(進士試) 3등 20인으로 합격하면서 받은 교지(敎旨)와 시권(試券), 일제강점기 세금 관련 문서 4점, 광무(光武) 연간인 1897~1904년까지 작성된 호적표(戶籍表) 6점 등이다...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부천시 역사. 부천은 일제강점기에 부평과 인천 지역의 일부를 병합하여 만든 고을이다. 따라서 부천의 조선시대사는 곧 부평사이다. 현재의 부천 지역은 조선시대 부평 영역의 동쪽과 남쪽 지역이었다. 주화곶(注火串)·상오정(上梧亭)·하오정(下梧亭)·석천(石川)·옥산(玉山) 등 5개 면이 이에 해당된다. 1413년(태종 13...
-
경기도 부천시에 세거하는 동성동본의 집성촌. 집성촌(集姓村)은 동성동본의 성씨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의 형성 시기는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이후 집성촌 형성이 일반화되는 객관적 배경으로는 상속제도의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
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언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부천시의 세거 성씨.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은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를 조상으로 하는 우량(友諒)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청주한씨대동보」에 의하면, 우량은 마한이 망한 후 신라에서 벼슬을 하여 한씨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우량의 32세손 한란은 928년(태조 11)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공을 세운 공...
-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의 청주한씨 문중 묘역. 계수동 일대의 청주한씨 묘역은 한명회의 동생인 한명진이 중시조가 되는 양도공파(襄悼公派)의 선영이다. 청주한씨 묘역은 크게 네 개 구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시기별로 본다면 먼저 묘역의 가장 중심부인 한언의 묘를 중심으로 한언 신도비, 한홍윤 묘, 한용 묘가 있다. 한언 묘 동쪽 능선에는 총 7기의 묘역과 8기의...
-
경기도 부천시 작동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 청주한씨의 묘역. 수주로를 타고 역곡에서 고강동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오른쪽에 음식점들이 군집해 있는 지역이 나오는데, 이곳이 작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청주한씨 묘들이 산재해 있다. 한성 묘에 있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등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다. 한세보 묘는 부인 전주이씨와의 합장묘이다. 묘비는 원수방부형으로,...
-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과 도당동, 여월동에 걸쳐 있는 와우산의 봉우리 중 하나. 춘의봉(春宜峰)은 96m의 야트막한 봉우리이고, 춘의동과 도당동, 여월동에 걸쳐 있는 와우산(臥牛山)의 봉우리 중 하나이다. 와우산은 춘의산이라고도 한다....
-
경기도 부천시에 세거해 온 토박이 성씨. 부천 지역에 마을이 형성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집성촌의 경우는 고강동에 밀양변씨가 입향(入鄕)한 조선 초기로 추정할 수 있다. 부천 지역에 있는 움집터나 고인돌의 존재로 미루어 보아 상고시대에도 자연부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자연부락의 거주민들이 현재의 부천 토박이들의 조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삼국시대와 고려...
-
조선 전기의 공신. 본관은 청주(淸州). 시호는 양도(襄悼). 아버지는 감찰 한기(韓起)이고, 어머니는 세자좌문학 이적의 딸이다. 형은 한명회(韓明澮)이다. 청주한씨는 한명진의 아들인 한언(韓堰) 때부터 부천 지역에 정착하였다. 한명진은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453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계유정난에 공을 세워 추충위사정난공신 3등에 녹훈되고 지의금부사 서...
-
조선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한명회(韓明澮)의 동생이자 부천의 청주한씨 입향조(入鄕祖) 한명진(韓明溍)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한진(韓鎭)이고, 부인은 유조의(柳祖誼)의 딸이다. 형제로는 내금위를 지낸 동생 한수우(韓守佑)가 있고, 아들은 호조판서를 지낸 한준(韓準)이다. 한수경은 1522년(중종 17)에 부천의 옛 지역인 부평도호부에서...
-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한수경의 묘. 한수경(韓守慶)[1522~1600]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영백(榮伯)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이조참판(嘉善大夫吏曹參判)을 지낸 한진(韓鎭)이다. 벼슬이 정3품의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까지 이르렀고 후에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부천과 시흥의 경계 지점인 함박산 남쪽면에 있는 청주한씨 묘역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한수...
-
조선 중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수이(受而), 호는 송월당(松月堂). 부천의 청주한씨 입향조(入鄕祖) 한명진(韓明溍)의 6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한여수(韓汝溲)이고, 아버지는 한오규(韓五奎)이다. 한숙(韓塾)은 허목(許穆)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1673년(현종 14) 진사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 1680년(숙종 6) 편수관에 천거되...
-
조선 중기 청주한씨 이양공파의 부천 입향조. 본관은 청주(淸州). 고조부는 한언(韓堰)[1448~1492]이며, 증조부는 한홍연(韓弘演)[1477~1543]이다. 조부는 한구(韓鉤)[1492~1561]이며, 부친은 한수덕(韓守德)[1521~1585]이다. 한양(韓瀁)[1553~1625]은 청주한씨 이양공파로, 조선 중기에 경기도 부천시 작동 지역에 정착하였다. 그 후 후손이 청주한...
-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한언의 묘. 한언(韓堰)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옥경(沃卿)이다. 아버지는 한명회(韓明澮)의 동생인 한명진(韓明溍)이고, 어머니는 권제(權踶)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음보(蔭補)로 입사(入仕)하여 1469년(예종 1) 부사과로서 진사시에 장원을 하였고,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사성...
-
조선 중기 청주한씨 부천 입향조. 본관은 청주(淸州). 고조할아버지는 시조인 한란의 12세손인 문열공(文烈公) 한상질(韓尙質)이다. 할아버지는 양도공(襄悼公) 한명진(韓明溍)이고, 아버지는 한언(韓堰)이다. 처는 여흥민씨(驪興閔氏)로, 승사랑 민시생(閔始生)의 딸이다. 한홍연(韓弘演)은 한언의 넷째 아들로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서 분가하여 경기도 부천시 춘의동에 정착한 인물이다....
-
청주한씨들의 소박한 유산 부천 겉저리는 씨족촌이다. 예전부터 작동에는 민씨, 여월동에는 원씨와 남씨, 삼정동에 박씨, 약대동의 김씨와 이씨, 그리고 겉저리에는 한씨들이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았다. 춘의동 당아래 토박이 청주한씨 한기원 할아버지는 그의 가족이 당아래에 들어오게 된 춘의동에 터 잡게 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여기는(당아래) 한씨들이 많이 살았어요...
-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산. 함박산은 ‘크고 밝게 빛나는 산’이라는 신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뫼가 바로 함박산의 어원으로 ‘한’은 ‘크다’라는 뜻이다. ‘’은 ‘밝은, 빛나는’의 뜻으로 삼한시대 이전 태양신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이던 말이다. 뫼는 산을 지칭하는 말이므로 족장들이 살고 있던 신성한 마을의 뒷산을 가리켜 함박산이라고 명명했다. 한자로 함박산(咸朴山)이라고...
-
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골짜기. 여흥민씨가 조상의 산소 앞에 세워 놓은 솟대가 있는 골짜기란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불을 질러 땅의 경계를 삼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까치울[작동]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작미골·절골·화죽골·탑골·지골·까치울 등의 골짜기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도 변함이 없다가 중동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삼태기산과 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