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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명맥을 잇는 손(孫)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B010102
지역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택희

경숙옹주께서 돌아가시면서 작동 땅을 하사받았거든요. 그래서 선산을 이곳으로 모시게 됐어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부천 또한 귀중한 역사를 담고 있는 소규모 부락을 재발견하였다.

작동, 일명 까치울이라고 불리는 마을은 비록 규모면에서는 작지만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다섯 번째 딸 경숙옹주와 그녀의 배필인 여천위 민자방의 일가가 집성촌을 이루고 생활하는 공간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매우 깊은 곳이다.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에게는 열두 명의 딸이 있었는데 당시 중전의 딸인 신숙공주가 일찍 세상을 뜨면서 열한 명의 딸이 출가했으며 그 중 민자방성종의 다섯 번째 사위가 되었다. 여천위 민자방의 조부는 1420년(세종 18)에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공에 이른 인물이며 아버지는 당시 성종의 총애를 받던 영유현령 민종원이었다. 민종원은 비록 높은 벼슬에 오르지 못했지만 성종이 아끼는 사람으로,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친 인재였다고 한다.

경숙옹주님은 저한테는 15대 할머니가 되세요. 처음 민씨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은 경숙옹주께서 돌아가시고 난 직후부터에요. 경숙옹주께서 돌아가시면서 작동 땅을 하사받았거든요. 그래서 선산을 이곳으로 모시게 된 거구요. 우리 후손들이 의논해서 각지에 있던 여흥민씨 친척들 중에 5대손 아래부터 모이자고 한 거죠.”(민경홍, 여천위 민자방의 16세손, 1931년생)

여흥민씨 가계가 작동에 터를 잡은 시기가 조선 초기인 성종 때 무렵임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500~600년 이상 된 유서 깊은 마을임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워낙 마을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있다가 1·4 후퇴 때 발견되어 뒤늦게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여흥민씨가 450년을 살아온 작동에는 오래된 옛집이 있다. 하나는 대들보에 도광(道光, 순조 34년, 1834년) 2월 19일이란 새긴 명문(銘文)이 있는 것이고 또 다른 옛집은 작동 127번지 1865년 경 건립한 가옥으로 성종의 부마인 여천위[위는 공주나 옹주하고 결혼한 사람에게 주는 관직] 민자방의 16세손인 민경홍 씨가 소유하고 있다.

“이곳은 다른 동네에 비해 그리 크지 않아서 많은 가구들이 살지는 않는 마을이지. 그리고 주로 벼농사 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아무래도 권력집안인 민씨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벼농사를 하면서도 농악 같은 의례들을 하지 않았어. 그런 것들은 낮은 계급의 사람들 중인이나 상인들이 하던 것이고 양반들은 하지 않았으니까 민씨 사람들은 그걸 하지 않았지. 그냥 일꾼들 데리고 벼농사 지으면서 살았지.”(민경홍, 여천위 민자방의 16세손, 1931년생)

작동이 형성된 내력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양반마을이었다는 사실 외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마을노인들 사이에 구전되는 이야기로는 지금까지 작동에 세거하고 있는 세 성씨[여흥민씨, 청주한씨, 해주정씨]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여흥민씨작동에 들어오기 전에는 전주이씨들이 살고 있었는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전부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현재 여흥민씨 종가에서 살고 있는 민경홍[여천위 민자방의 16세손] 씨에 따르면 여흥민씨들이 작동에 거주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작동에 모셔져 있는 경숙옹주 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여흥민씨 장령공파의 증시조 민효환의 증손자인 민종원경숙옹주의 능을 모시고자 옛 반월 지역인 경기도 안산에서 작동으로 이주하면서부터 마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여흥민씨의 족보에도 처음 작동에 묘를 쓴 인물이 민종원으로 기록되고 있다. 즉 작동여흥민씨 가계는 성종대인 15세기 말부터 형성되었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인터뷰 대상자인 민경홍 님은 현재 3대에 걸쳐서 여흥민씨 고택에 기거하시면서 민자방경숙옹주의 선산을 모시고 있었다.

[정보제공]

  • •  민경홍(여천위 민자방의 16세손, 193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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