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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323
한자 選擧
영어공식명칭 Elec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정규정지은

[정의]

경기도 부천시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뽑는 행위.

[개설]

선거제도는 민주 정치 과정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으로 의회의 성격, 정당의 특성, 이익 집단의 형태, 정부의 안정성과 국가의 통합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이다. 1948년 5월 10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출된 198명의 국회의원으로 제헌 국회가 구성된 이래 변화를 거듭하여 왔다.

[부천의 선거구 변천]

1. 광복 이후~1960년대

부천시의 역대 선거 관리와 사무 업무는 1948년 8월 15일 이후 1960년 이전까지 일반 행정 기관에서 담당하였다. 그러나 1962년 12월 16일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선거 관리를 중립적인 국가기관이 맡도록 하는 제3공화국 헌법 제107조 「선거관리위원회법」이 제정·시행되면서, 1963년 1월 16일 헌법 기관으로서의 선거 관리 위원회가 발족하였다.

1963년 2월 7일에는 하급 조직의 하나로 경기도 제13 지역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직되어 부천군청 내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당시 부천군, 시흥군, 옹진군의 선거 사무를 관리하게 되었다. 1963년 2월 23일에는 투표구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을 완료하여 부천군에 47개, 시흥군에 25개, 옹진군에 8개의 투표구가 설치되었다. 1967년 4월 9일 소사읍에 4개, 소래면에 1개, 오정면에 1개 투표구를 추가 증설함으로써 부천군의 투표구는 55개로 늘어났다.

2. 1970년대

1970년 12월 1일 「국회의원선거법」 개정에 따른 조직 개편으로 경기도 제13 지역 선거구에서 제15 지역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로 변경되고 관할 구역으로 부천군와 옹진군을 맡게 되었다. 1971년 1월 26일에는 위원회의 명칭이 경기도 제16 지역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로 변경되었다. 1971년 3월 8일 소래면과 용유면에 각 1개씩 투표구가 증설되어 부천군은 57개 투표구가 되었다.

1973년 1월 29일 경기도 제6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로 변경되고 동 관리 위원회 산하에 57개 투표구를 두게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소사읍 일원이 부천시로 승격되며 단행된 행정구역 개편으로 1973년 8월 8일 부천시에 24개 투표구를 두게 되었다. 1975년 10월 1일 김포군 오정면이 부천시에 편입됨에 따라 1975년 12월 4일 투표구가 재조정되어 부천시에 50개의 투표구가 설치되었다. 1978년 3월 24일 부천시에 3개의 투표구를 증설하여 53개로 늘어났고, 1978년 10월 26일에는 총 58개의 투표구를 갖는 광역 선거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3. 1980년대

1970년대에 이은 부천시 투표구의 확장 추세는 1980년 8월 20일 63개의 투표구, 1984년 10월 10일에는 80개의 투표구를 갖기에 이르렀고 이들 지역의 선거 관리는 1981년 2월 26일 경기도 제7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 소관으로 되었다가 1984년 7월 25일 「선거관리위원회법」 변경으로 경기도 제5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가 맡게 되었다.

1988년 1월 1일 부천시가 중구와 남구로 행정구역이 분구됨에 따라 기존의 부천시선거관리위원회는 부천시 중구선거관리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고 부천시 남구선거관리위원회가 새로 설치되었다. 1988년 3월 17일 「국회의원선거법」 개정으로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변경됨에 따라 기존의 경기도 제5 선거구 선거관리위원회는 폐지되었다.

4. 1990년대~현재

1991년 12월 31일 부천시 중구선거관리위원회는 부천시 중구갑선거관리위원회로 명칭이 변경되고 부천시 중구을선거관리위원회가 신설되었다. 1993년 2월 1일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2월 2일 부천시 원미구선거관리위원회, 오정구선거관리위원회, 소사구선거관리위원회로 변경되었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원미구 갑 선거구에 심곡1동, 심곡2동, 심곡3동, 원미1동, 원미2동, 소사동, 역곡1동, 역곡2동, 춘의동, 도당동이 포함되었고, 원미구 을 선거구에는 약대동, 중동, 중1동, 중2동, 중3동, 중4동, 상동, 상1동, 상2동, 상3동이 포함되어 있다. 소사구 선거구에는 심곡본1동, 심곡본동, 소사본동, 소사본3동, 범박동, 괴안동, 역곡3동, 송내1동, 송내2동이, 오정구 선거구에는 성곡동, 원종1동, 원종2동, 고강본동, 고강1동, 오정동, 신흥동이 해당된다. 이와 같은 선거구는 부천시의 행정구 폐지에 따라 기존의 ‘부천시 원미구 갑, 원미구 을, 소사구, 오정구’가 ‘부천시 갑, 부천시 을, 부천시 병, 부천시 정’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2020년 4월 15일에 실시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적용되었다.

2022년 현재, 부천시의 선거구와 구역은 다음과 같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총 4개로, 부천시 갑 선거구에 심곡동, 부천동이, 부천시 을 선거구에 중동, 신중동, 상동이, 부천시 병 선거구에 대산동, 소사본동, 범안동이, 부천시 정 선거구에 성곡동 오정동이 속한다. 도의원 선거구는 총 8개로, 부천시 제1 선거구에 부천동이, 부천시 제2 선거구에 심곡동이, 부천시 제3 선거구에 신중동이, 부천시 제4 선거구에 중동, 상동이, 부천시 제5 선거구에 대산동이, 부천시 제6 선거구에 소사본동, 범안동이, 부천시 제7 선거구에 성곡동이, 부천시 제8 선거구에 오정동이 속한다. 시의원 선거구는 총 10개로, 가 선거구에 부천동이, 나 선거구에 심곡동이, 다 선거구에 신중동이, 라 선거구에 중동, 상동[일부]이, 마 선거구에 상동[일부]이, 바 선거구에 대산동이, 사 선거구에 소사본동이, 아 선거구에 범안동이, 자 선거구에 성곡동이, 차 선거구에 오정동이 속한다.

[대통령 선거]

대통령 선거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총 아옵 번의 헌법 개정을 거치는 동안 직선제와 간선제를 오가는 제도상의 변화를 거쳤다. 제헌 헌법에서 채택된 간선제는 1대, 4대, 8대~12대 때 실시됐고 직선제는 2대~7대, 13대~16대 때 실시되었다. 특히 4대 때는 4.19혁명을 전후하여 직선제와 간선제로 두 번 실시되는 난맥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와 달리 간선제는 선출 방법이 세 번 바뀌었다. 1대, 4대 때는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였고 8대~11대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12대는 대통령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1. 제1공화국

1) 초대 대통령 선거[1948년 7월 20일, 간선제]

대통령 선거의 국회 간선제, 1차 중임, 임기 4년의 내용을 담은 초대 헌법이 제정되었고, 광복 3년 만에 제헌국회에서 초대 대통령 선거가 간선제로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 180표를 얻은 이승만이 13표 획득에 그친 김구(金九)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2) 제2대 대통령 선거[1952년 8월 5일, 직선제]

1952년 이승만(李承晩)은 대통령직선제를 요지로 한 개헌안을 심야 날치기로 통과시켰으며, 이승만·조봉암(曺奉巖)·이시영(李始榮) 등이 후보로 나와 이승만이 74.6%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이 선거에서 부천군의 총 유권자 4만 1304명 중에서 81.9%가 투표하였으며, 자유당 이승만 후보는 86.1%, 조봉암 후보는 5%, 이시영 후보는 3.5%로 강력한 여당 지향적인 투표 성향을 나타냈다.

3) 제3대 대통령 선거[1956년 5월 15일, 직선제]

1954년 이승만은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사사오입 개헌을 강행하였다. 이승만과 조봉암이 후보로 나왔으며, 이승만이 70%, 조봉암이 30%의 득표율을 얻어 이승만이 장기 집권에 성공하였다. 부천 지역에서는 여전히 친여 편향적인 투표 성향을 보였으며, 전체 유권자 4만 8205명 중 4만 3076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89.4% 투표율을 보였다. 이승만 후보는 61.2%, 조봉암 후보는 14.7%를 획득하였다.

4) 제4대 대통령 선거[1960년 3월 15일, 직선제]

여당인 자유당과 정부가 전국적, 조직적으로 부정 선거를 감행하였으며, 이승만과 조병옥(趙炳玉)이 출마하여, 이승만이 100%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결국 이승만은 하야하였다.

2. 제2공화국

1) 제4대 대통령 선거[1960년 8월 12일, 간선제]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 내각책임제 헌법에 따라 민·참의원 합동 회의에서 간선제로 실시하였으며, 민주당 구파의 윤보선(尹潽善)이 재적 의원 263명 중 208명의 찬성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하였다.

3. 제3공화국

1) 제5대 대통령 선거[1963년 10월 15일, 직선제]

박정희(朴正熙) 등 5.16군사정변 주체 세력은 1961년 12월 6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통과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회부, 찬성률 78.8%로 채택하고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는 46.6%를 득표, 45.1%의 득표율을 얻은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부천군의 전체 인구는 12만 6026명이었고 총 유권자는 5만 8498명이었으며 투표율은 84.5%를 기록하였다. 이때 전국 순위와 달리 민정당 윤보선 후보가 47.5%를 득표하고, 박정희 후보가 41.4%를 득표해 부천군의 친여 편향적인 투표 성향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2) 제6대 대통령 선거[1967년 5월 3일, 직선제]

박정희가 51.5%의 득표율을 얻어 40.9%를 얻은 윤보선을 이기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부천군에서는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민당의 윤보선 후보가 2만 3231표를 획득해 2만 3197표를 얻은 박정희 후보를 근소한 차로 누르고 선두를 지켰다. 당시 부천군의 투표율은 81.6%를 기록하였다.

3) 제7대 대통령 선거[1971년 4월 27일, 직선제]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대통령의 3선 연임 허용을 골자로 한 3선 개헌으로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53%의 득표율을 얻어, 45.3%의 지지를 받은 김대중(金大中)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시 승격 전의 시기였으며 투표율은 78.5%로 기존 투표율에 비해 저조하였고, 박정희 후보가 신민당 김대중 후보보다 앞서 다시 집권당 후보에게 투표하게 된다.

4. 제4공화국

1) 제8대 대통령 선거[1972년 12월 23일, 간선제]

박정희는 1972년 10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12월 제8대 대통령 선거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99.9%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 제9대 대통령 선거[1978년 7월 6일, 간선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99.8% 지지로 박정희가 당선되었으나,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는 사망하였다.

3) 제10대 대통령 선거[1979년 12월 6일, 간선제]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최규하(崔圭夏) 대통령 권한대행을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나, 6일 후 전두환 등 신군부에 의한 12.12군사반란이 일어났다.

4) 제11대 대통령 선거[1980년 8월 27일, 간선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한 신군부의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은 1980년 8월 통일주체국민회의 투표를 통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5. 제5공화국

1) 제12대 대통령 선거[1981년 2월 25일, 간선제]

1980년 10월 대통령 임기 7년 단임과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 선출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공포하였다. 제12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전국 77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 결과 전두환 후보가 90.1%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야당 후보였던 유치송·김종철·김의택 등을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미국식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선거를 모방한 제12대 대통령 선거 방식은 유신 시대의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체육관 선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이 제기되었다.

6. 제6공화국

1) 제13대 대통령 선거[1987년 12월 16일, 직선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과 노태우의 6.29민주화선언으로 5년 단임의 대통령직선제로 헌법을 개정하였다. 여당의 노태우와 야당의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이 출마하여 노태우 후보가 36.7%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김영삼은 28%, 김대중은 27.1%, 김종필은 8.1%의 지지를 얻었다. 제8대 대통령 선거부터 제12대 선거까지는 모두 간선제였고, 제13대 선거에 이르러 다시 직선제로 개정되어 부천시에서도 선거에 참여하여 투표율 87%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투표율은 전국 평균보다 낮았으며 경기도에서도 가장 낮은 투표율이었다. 전국 득표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앞선 데 비해, 부천시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28.8%, 김영삼 후보가 28.2%로 김대중 후보가 앞섰다.

2) 제14대 대통령 선거[1992년 12월 18일, 직선제]

김영삼·김대중·정주영·박찬종·백기완 등이 출마하여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42.0%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김대중은 33.8%, 정주영은 16.3%, 박찬종은 6.4%, 백기완은 1%의 득표율을 보였다. 부천시에서는 투표율이 더 낮아져 80.7%를 보였으며, 김영삼 후보는 33.1%를 얻어 38.0%를 얻은 김대중 후보보다 뒤졌다.

3) 제15대 대통령 선거[1997년 12월 18일, 직선제]

이회창·김대중·이인제·권영길 등이 출마하여 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40.3%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이회창은 38.7%, 이인제는 19.2%, 권영길은 1.2%의 득표율을 보였다. 부천시의 투표율은 81.2%를 기록하였으며, 김대중 후보가 44.0%, 이회창 후보가 33.3%를 얻었다.

4) 제16대 대통령 선거[2002년 12월 19일, 직선제]

노무현(盧武鉉)·이회창·권영길 등이 출마하여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48.9%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한나라당 이회창은 46.6%, 민주노동당 권영길은 3.9%를 얻었다.

5)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년 12월 19일, 직선제]

제6공화국 참여정부 때인 2007년 12월 19일 국민 직접선거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10명이 후보로 출마하였고, 2373만 2854명이 투표하여 투표율은 역대 대통령 선거 중 최저인 63%를 기록하였으며, 투표 결과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1149만 2389표를 얻어 득표율 48.7%로 당선되었다.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민주당의 이인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무소속의 이회창 등 10명이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는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보수 세력과 민주 세력의 대결이라는 한국 정치의 기본 구도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나라당은 획득할 수 있는 지지층을 최대한 흡수한 반면, 정동영과 문국현 등의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민주 세력은 핵심 지지층만 결집시키는 데 그쳤고, 민주 세력 경향의 지지층이 이탈하는 양상을 보인 것이 패인으로 분석된다.

6) 제18대 대통령 선거[2012년 12월 19일, 직선제]

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직접선거로 실시된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무소속의 박종선·김소연·강지원·김순자 총 7명이 후보로 등록하여 이정희 후보가 중도에 사퇴하였다. 선거인 수 4050만 7842명 가운데 3072만 1459명이 투표하여 투표율은 75.8%였다. 총선거인 4050만 7842명 가운데 3072만 1459명이 투표하여 투표율 75.8%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제15대 대통령 선거[77.1%]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며 제17대[63%]에 비하면 12%p 이상 상승한 수치이다. 새누리당 박근혜가 51.55%로 당선되었고, 민주통합당의 문재인은 48.02%의 득표율을 보였다.

원미구 투표구에서는 35만 4869명의 선거인 수 중에서 26만 8007명이 투표하여 박근혜 12만 1498표, 문재인 14만 4862표, 박종선 78표, 김소연 145표, 강지원 444표, 김순자 253표가 나왔다. 소사구 투표구에서는 선거인 수 18만 5997명 중 14만 133명이 투표하였다. 그 결과 박근혜 6만 4835표, 문재인 7만 4327표, 박종선 34표, 김소연 106표, 강지원 217표, 김순자 126표가 나왔다. 오정구 투표구에서는 선거인 수 15만 1739명 중 10만 9015명이 투표하였다. 투표 결과는 박근혜 5만 291표, 문재인 5만 7987표, 박종선 35표, 김소연 54표, 강지원 171표, 김순자 128표가 나왔다. 전국 투표 결과와 달리 부천시의 모든 투표구에서는 박근혜 후보보다 문재인 후보가 더 많은 득표율을 보였다.

7) 제19대 대통령 선거[2017년 5월 9일, 직선제]

2017년 5월 9일에는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국민의 직접선거로 실시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 국민의당의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 새누리당의 조원진 후보, 경제애국당의 오영국 후보, 국민대통합당의 장성민 후보, 민중연합당의 김선동 후보, 한국국민당의 이경희 후보, 홍익당의 윤홍식 후보, 무소속의 김민찬 후보가 입후보하였으며, 통일한국당의 남재준 후보와 한반도미래연합의 김정선 후보는 중도 사퇴하였다. 선거인 수 4247만 9710명 가운데 3280만 7908명이 투표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1342만 3800표를 얻어 41.08%의 득표율로 당선되었고,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785만 2849표를 얻어 24.03%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부천시의 선거인 수는 70만 5885명이며, 그중 54만 3777명이 투표하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부천시에서 23만 9697표를 얻었으며, 44.08%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8) 제20대 대통령 선거[2022년 3월 9일, 직선제]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 기본소득당의 오준호 후보, 국가혁명당의 허경영 후보, 노동당의 이백윤 후보, 새누리당의 옥은호 후보, 신자유민주연합의 김경재 후보, 우리공화당의 조원진 후보, 진보당의 김재연 후보, 통일한국당의 이경희 후보, 한류연합당의 김민찬 후보가 입후보하였으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는 중도 사퇴하였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가 1639만 4815표를 얻어 48.5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부천시의 선거인 수는 1143만 3288명이고 그 중 876만 3727명이 투표하였다. 전국 결과와 달리 부천시에서는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의 득표[42.44%]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 득표율[53.97%]이 더 높았다.

[국회의원 총선거]

1. 제1대 국회의원 총선거[1948년 5월 10일]

1948년 5월 10일 미군정 법령에 따라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로,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한 소선거구제였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한국민주당·대동청년단 등 48개 정당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95.5%였다. 부천에서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의 이유선 후보가 44.4%의 득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2.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1950년 5월 30일]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국회의원 선거법」에 따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로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민주국민당·대한국민당·국민회·대한청년당 등 39개 정당과 단체에서 참여하였다. 이때 전국 평균 투표율은 91.9%를 기록하였다. 부천에서는 국민회 이유선 후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소속 출마자들이었으며, 무소속의 박제환 후보가 28.2%를 얻어 이유선 후보의 23.4% 득표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3. 제3대 국회의원 총선거[1954년 5월 20일]

우리나라 선거 사상 처음으로 입후보 공천제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였으며, 국민의 직접선거로 이루어졌다. 자유당·민주국민당·국민회·대한국민당 등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91.1%를 보였다. 부천에서는 자유당의 장경근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득표율은 35.1%로 박제환 후보의 29.5%보다 앞섰다.

4. 제4대 국회의원 총선거[1958년 5월 2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민의원 선거법」에 따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로, 소선구제의 선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자유당·민주당·통일당 등 12개 정당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90.7%였다. 부천에서는 자유당의 장경근 후보가 67.6%의 압도적인 우세로 재당선되었다. 무소속 박제환 후보는 17.9%, 민주당 김용성 후보는 14.3%를 얻었다.

5.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1960년 7월 29일]

제2공화국 때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나누어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로, 선거 방식은 민의원은 소선거구, 참의원은 중선거구·대선거구였다. 민주당·사회대중당·자유당·한국사회당·통일당 등이 참여하였으며, 전국 평균 투표율은 민의원 84.3%, 참의원 84.1%를 보였다. 부천에서는 박제환 후보가 39.4%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민주당에서는 2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송석홍 후보가 25.9%, 박승희 후보가 17.5%를 얻었고, 무소속의 이계무 후보와 장석삼 후보는 각각 11.9%와 11.1%를 얻었다.

6. 제6대 국회의원 총선거[1963년 11월 26일]

제3공화국 시기, 우리나라 최초로 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누어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였다. 선거 방식은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한 소선구제[지역구], 비례대표제[전국구]였으며, 민주공화당·민정당·민주당·자유민주당·국민의 당 등 12개 정당이 참여하였다. 전국 평균 투표율은 72.1%로 점차 투표율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부천에서는 9명의 후보가 출마하였으며, 민주공화당 옥조남 후보가 24.8%를 얻어 국민의당 박제환 후보의 23.3%보다 근소한 차로 앞서 당선되었다.

7. 제7대 국회의원 총선거[1967년 6월 8일]

제3공화국 때인 1967년 6월 8일 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누어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로, 선거 방식은 소선거구[국민 직접선거]+전국구[간접 선출]의 형식이었다. 민주공화당·신민당·대중당·자유당·한국독립당 등 11개 정당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76.1%였다. 부천에서는 민주공화당의 오학진 후보가 2만 9930표를 얻고, 신민당의 박제환 후보가 1만 4619표를 얻어 오학진 후보가 당선되었다. 당시 부천군의 투표율은 74.9%였다.

8. 제8대 국회의원 총선거[1971년 5월 25일]

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누어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로, 선거 방식은 지역구[국민 직접선거]+전국구[정당별 득표율에 의한 간접 선출]로 이루어졌다. 민주공화당·신민당·국민당·민중당·통일사회당·대중당 등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73.2%를 보였다. 부천에서는 66.9%의 투표율을 보였으며, 민주공화당 오학진 후보가 2만 7044표, 신민당의 안동선 후보가 2만 3426표를 얻어 오학진 후보가 재선되었다.

9. 제9대 국회의원 총선거[1973년 2월 27일]

제4공화국 시기, 중선거구와 유신 정우회로 구분해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였다. 선거 방식은 중선거구[국민 직접선거]+유신정우회[대통령 제청에 의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에서 선출되었다. 민주공화당·신민당·민주통일당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72.9%였다. 부천군·시흥군·옹진군을 포함한 경기도 제6 선거구에서 오학진과 이택돈 두 후보가 당선되었다. 오학진 후보는 2만 4147표, 이택돈 후보는 1만 3057표를 얻었으며, 투표율은 73.7%였다.

10. 제10대 국회의원 총선거[1978년 12월 12일]

제10대 선거도 중선거구제와 유신 정우회 국회의원으로 구분해 치러진 선거였다. 선거 방식은 중선거구[국민 직접선거]+유신정우회[대통령 제청에 의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에서 선출되었다. 민주공화당·신민당·민주통일당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77.1%였다. 부천 지역구에서는 신민당의 이택돈 후보와 민주공화당의 윤국로 후보가 당선되었다. 부천에서는 이택돈 후보 2만 3223표, 윤국로 후보 1만 7852표, 민주통일당 신하철 후보 2,935표, 무소속의 안동선 후보가 2만 1,345표를 얻은 것으로 집계되어, 안동선 후보가 부천 지역에서는 당선권 내에 진입하였으나 안양, 시흥, 옹진군에서는 지지가 저조하였다.

11. 제11대 국회의원 총선거[1981년 3월 25일]

제5공화국 시기 중선거구[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누어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로 민주 정의당·민주한국당·한국국민당·민권당·신정당·민주사회당 등 12개 정당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78.4%를 보였다. 이때는 부천시, 강화군, 김포군을 경기도 제7 선거구로 새롭게 개편한 후였으며, 부천시의 경우 72.4%의 투표율을 보였다. 민주정의당의 신능순 후보와 민주한국당의 오흥석 후보가 당선되었다.

12.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1985년 2월 12일]

제5공화국 때인 1985년 2월 12일 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누어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로, 선거 방식은 지역구[국민 직접선거에 의한 1구 2인제]+전국구[비례 대표제]로 실시되었다. 민주정의당·신한민주당·민주한국당·한국국민당·신정사회당 등 9개 정당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84.6%를 나타내었다. 부천이 포함된 제5 선거구에서는 신한민주당의 안동선 후보가 32.0%, 박규식 후보가 27.6%를 얻어 당선되었다. 부천시의 투표율은 80.3%였으며 안동선 후보가 35.8%, 박규식 후보가 19.7%로 안동선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13.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1988년 4월 26일]

제6공화국 때인 1988년 4월 26일 지역구[국민 직접선거에 의한 소선거구제]와 전국구[비례 대표제]로 나누어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이다. 민주정의당·평화민주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등 14개 정당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75.8%였다. 부천시에서는 중구와 남구 2개의 선거구를 가졌고, 중구에서는 민정당의 임무웅 후보가 33.9%, 평민당의 안동선 후보가 32.4%를 획득하여 임무웅 후보가 당선되었다. 남구에서는 통일민주당의 최기선 후보가 24.6%, 무소속의 박규식 후보가 24.4%를 획득하여 최기선 후보가 당선되었다.

14.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1992년 3월 24일]

제6공화국 때인 1992년 3월 24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로, 선거 방식은 지역구[국민 직접선거에 의한 소선거구]+전국구로 치러졌다. 민주자유당·민주당·통일민주당·신정치개혁당·공면민주당·민중당 등의 정당이 참여하였으며, 전국 평균 투표율은 71.9%였다. 부천시는 중구 갑, 중구 을, 남구의 3개 선거구를 가졌는데 중구 갑에서는 민주당의 안동선 후보가 50.1%를 얻어 33.7%를 얻은 민자당의 김길홍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중구 을에서는 민주당의 원혜영 후보가 51.8%를 득표하여 당선되었고, 남구에서는 민주당의 박규식 후보가 47.2%를 얻어 민자당으로 당적을 옮긴 최기선 후보[33.9%]를 이겼다. 이 선거로 부천은 모두 민주당 국회의원을 배출하여 ‘야당 도시’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15.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1996년 4월 11일]

정치 개혁법인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따라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로, 지역구[국민 직접선거에 의한 소선거구제]+전국구로 실시되었다. 신한국당·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통합민주당 등 8개 정당이 참여하였고, 전국 평균 투표율은 63.9%로 낮아졌다. 부천시는 원미구 갑·원미구 을·소사구·오정구 4개 선거구를 가졌다. 원미구 갑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의 안동선 후보가 36.8%를 얻어 당선되었고, 원미구 을에서는 신한국당의 이사철 후보가 37.4%로 당선되었다. 소사구에서는 신한국당 김문수 후보와 국민회의 박지원 후보의 접전 끝에 김문수 후보가 38.6%로 당선되었다. 오정구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의 최선영 후보가 당선되었다.

16.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2000년 4월 13일]

지역구[소선구제]+전국구[비례 대표제]로 나누어 실시한 선거였다. 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자유민주연합·민국당·민주노동당·청년진보당·한국신당 등이 참여하였으며, 전국 평균 투표율은 57.2%였다. 부천 원미구 갑에서는 49.4%의 투표율로 민주당 안동선 후보가 3만 494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원미구 을에서는 신한국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꾼 이사철 후보가 15대 선거 때보다 3,874표를 더 얻어 3만 5245표를 얻는 데 그친 반면, 국민회의에서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 배기선 후보는 무려 1만 5535표를 더 얻어 제15대 당시 민주당 표와 무소속 표가 배기선 후보에게 쏠렸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소사구는 55.7%의 투표율을 기록하였고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오정구는 48.3%의 투표율로 4개 선거구 가운데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였으며, 민주당 최선영 후보가 2만 7676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17.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2004년 4월 15일]

지역구[소선거구제]와 정당별 비례대표제로 나누어 선거인 1인당 2표제로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였다.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노동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 연합 등 14개 정당이 참여하였으며, 전국 평균 투표율은 60.6%였다. 부천에서 원미구 갑은 열린우리당 김기석 후보가 3만 1595표를 얻어 한나라당 임해규 후보를 따돌렸다. 원미구 을은 64.9%의 투표율을 기록해 제16대 선거보다 투표율이 4.2% 증가하였으며, 열린우리당 배기선 후보가 5만 6752표를 얻어 한나라당 이사철 후보를 8,944표 차로 이겼다. 소사구는 61%의 투표율을 기록해 제16대 선거보다 투표율이 5.3% 증가하였으며,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가 5만 418표를 얻어 열린우리당 김만수 후보를 1만 2000여 표보다 큰 표 차로 이겼다. 오정구는 54.2%의 투표율을 기록하였으며, 열린우리당 원혜영 후보가 4만 3284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18.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2008년 4월 9일]

지역구와 정당별 비례대표제로 나누어 선거인 1인당 2표제로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였다. 통합민주당·한나라당·자유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 등 15개 정당이 참여하였으며, 전국 평균 투표율은 46.1%였다. 부천시 원미구 을은 한나라당 이사철 후보가 4만 3102표를 얻어 민주당 배기선 후보를 따돌렸다. 부천시 소사구는 한나라당의 차명진 후보가, 부천시 오정구는 통합 민주당의 원혜영 후보가 당선되었다.

19.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부천시 원미구 갑에 새누리당 임해규, 민주통합당 김경협, 무소속 류재선, 김기석 후보가 출마하여 김경협이 당선되었다. 부천시 원미구 을에는 새누리당 손숙미, 민주통합당 설훈이 출마하여 설훈이 당선되었고, 소사구에서는 새누리당 차명진, 민주통합당 김상희, 자유선진당 전덕생, 정통민주당 강백수가 출마하여 김상희가 당선되었다. 오정구에서는 새누리당 안병도, 민주통합당 원혜영, 국민행복당 나삼운, 무소속 서영석, 홍건표가 출마하여 원혜영이 당선됨으로써 모든 선거구에서 민주통합당이 당선되었다.

20.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2016년 4월 13일]

원미구 갑은 새누리당 이음재,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국민의당 황인직이 후보로 출마하였다. 선거인 수 14만 3513명 중 투표자는 7만 5346명이었다. 이음재는 2만 5788표로 득표율 34.64%, 김경협은 3만 1582표로 득표율 42.43%, 황인직은 1만 7055표로 22.91%의 득표율을 차지해 김경협이 당선되었다. 무효 투표 수는 921표였다. 원미구 을에는 새누리당 이사철, 더불어민주당 설훈, 국민의당 이승호, 민중연합당 백현종이 후보로 출마하였다. 선거인 수 21만 9314명 중 투표자는 13만 4751명이었다. 이사철이 4만 7929표로 35.90%를 득표하였고, 설훈이 5만 7198표로 42.84%, 이승호가 2만 6519표로 득표율 19.86%를, 백현종이 1,841표로 1.37%의 득표를 해 설훈이 당선되었다. 무효표는 1,264표였다.

소사구에서는 새누리당 차명진,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국민의당 김정기, 정의당 신현자 후보가 출마하였다. 선거인 수 18만 4100명 중 투표자는 10만 7878명이었다. 차명진이 3만 9303표로 36.86% 득표, 김상희는 4만 6650표로 43.75%, 김정기가 1만 8121표로 16.99%의 득표를, 신현자가 2,545표로 2.38%를 득표해 김상희가 당선되었으며 무효표는 1,259표였다. 부천시 오정구에는 새누리당 안병도,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국민의당 서영석, 정의당 구자호 후보가 출마하였고 선거인 수는 15만 2131명, 투표자 수는 8만 195명이었다. 안병도가 2만 4710표로 31.12% 득표하였고, 원혜영이 3만 5559표 44.78%, 서영석이 1만 7310표로 득표율 21.80%, 구자호가 1,818표로 2.28%를 득표해 원혜영이 당선되었으며 무효표는 798표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부천시의 네 선거구 모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당선되었다.

21.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2020년 4월 15일]

부천시 갑 선거구에는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후보, 미래통합당 이음재 후보, 정의당 김선자 후보, 국가혁명배당금당 조은지 후보가 출마하였다. 최종 당선인은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후보로, 4만 8002표를 얻어 59.17%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부천시 을 선거구에는 더불어민주당 설훈 후보, 미래통합당 서영석 후보, 정의당 이미숙 후보, 민중당 이종남 후보, 국가혁명배당금당 남궁진숙 후보가 출마하였고, 더불어민주당 설훈 후보가 최종 당선되었다. 설훈 후보는 8만 889표를 얻어 54.90%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부천시 병 선거구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후보, 미래통합당 차명진 후보, 정의당 신현자 후보, 국가혁명배당금당 서금순 후보가 출마하였으며,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후보가 최종 당선되었다. 김상희 후보는 7만 7577표를 얻어 60.55%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부천시 정 선거구에는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후보, 미래통합당 안병도 후보, 정의당 구자호 후보, 국가혁명배당금당 서남순 후보가 출마하였고, 더불어민주당의 서영석 후보가 최종 당선되었다. 서영석 후보는 4만 9552표를 얻어 56.74%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이어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부천시의 네 선거구에서 모두 당선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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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4 선거 <문단>18.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2008년 4월 9일)</문단> <문단>지역구와 정당별 비례대표제로 나누어 선거인 1인당 2표제로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였다. <기관 검색='0' 검색어=''>통합민주당</기관>, <기관 검색='0' 검색어=''>한나라당</기관>, <기관 검색='0' 검색어=''>자유민주당</기관>, <기관 검색='0' 검색어=''>민주노동당</기관>, <기관 검색='0' 검색어=''>창조한국당</기관> 등 15개 정당이 참여하였으며, 전국 평균 투표율은 46.1%였다.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시'>부천시</지명> 원미구을은 <기관 검색='0' 검색어=''>한나라당</기관> <인명 검색='0' 검색어=''>이사철</인명> 후보가 43,102표를 얻어 <기관 검색='0' 검색어=''>민주당</기관> <인명 검색='0' 검색어=''>배기선</인명> 후보를 따돌렸다.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시'>부천시</지명> 소사구는 <기관 검색='0' 검색어=''>한나라당</기관>의 <인명 검색='0' 검색어=''>차명진</인명> 후보가 <지명 검색='1' 검색어='부천시'>부천시</지명> 오정구는 <기관 검색='0' 검색어=''>통합민주당</기관>의 원혜영후보가 당선되었다. </문단>
이용자 의견
N** 2020년에 맞게 수정해주세요.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은 수정증보 사업을 통해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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