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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926
영어공식명칭 Beongaedeul|Beongaedeul Field
이칭/별칭 전야(電野)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철박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번개들 -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해당 지역 소재지 번개들 -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격

[정의]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에 있는 들.

[개설]

번개들은 전야(電野)라고도 한다.

[명칭 유래]

번개들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 주화곶면(注火串面) 대장리에 속하는 전야[번ᄀᆞㅣㅅ들]로 되어 있다. 번개들은 지명만 보일 뿐 위치나 지명의 유래는 알지 못한다. 번개들의 번은 ‘벌어진’의 뜻이며, 개는 포구의 우리말이다. 우리말 번개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전(電)’이 된 것으로 보인다. 즉 포구를 막아 둑을 만들고 들을 만들어서 들을 넓혔다는 뜻의 번개들이 된 것이다.

[자연환경]

번개들은 대장 큰말에서 섬말 앞에 새보둑을 만들면서 한강 하구를 통하고 김포를 거쳐 올라온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만들어진 들판이다.

[현황]

새보둑을 만들기 전에는 대장 들판에 바닷물이 들어와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새보둑이 만들어지면서 새로 농토가 생겨난 것이 번개들로 추정된다. 섬말이 조선시대 후기에서야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을 보면 이 번개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장 큰말 앞으로 지나가는 동부간선수로가 만들어졌어도 새보둑은 그대로 남았고 번개들도 그대로 남았다. 새보둑이 만들어진 뒤에는 들이 아주 넓어졌지만, 그 전에는 개별적으로 둑을 막아 농지로 만들었다. 번개들은 큰말에서 섬말까지의 들을 말하며,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논농사를 경작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1.02 범개들 <참고문헌> <문헌><서명 검색어='조선지지자료'>『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서명>(<출판사항>조선총독부, 1919</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2010.12.16 번개들 1) <소표제>[명칭유래]</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번개들'>번개들</지명>은 <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 전야(電野)로 되어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번개들'>번개들</지명>의 번은 ‘벌어진’의 뜻이며, 개는 포구의 우리말이다. 우리말 번개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전(電)’이 된 것이다. 즉, 포구를 막아 들을 만들어서 들을 넓혔다는 뜻의 <지명 검색='1' 검색어='번개들'>번개들</지명>이 된 것이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번개들'>번개들</지명>은 <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 대장리에 속하는 전야(電野)로 되어 있고 '번개뜰'이라고 해놓았다.<지명 검색='1' 검색어='번개들'>번개들</지명>의 번은 ‘벌어진’의 뜻이며, 개는 포구의 우리말이다. 우리말 번개가 한자로 표기되면서 ‘전(電)’이 된 것이다. 즉 포구를 막아 둑을 만들고 들을 만들어서 들을 넓혔다는 뜻의 <지명 검색='1' 검색어='번개들'>번개들</지명>이 된 것이다.</문단> 2)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새보둑'>새보둑</지명>이 만들어진 뒤에는 들이 아주 넓어졌지만, 그 전에는 개별적으로 둑을 막아 농지로 만들었다.<지명 검색='0' 검색어=''>큰말</지명>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까지의 들을 말하며,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논농사를 경작하고 있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번개들'>번개들</지명>은 대장 큰말에서 섬말 앞에 새보둑을 만들면서 한강 하구를 통하고 김포를 거쳐 올라온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만들어진 들판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새보둑'>새보둑</지명>을 만들기 전에는 대장 들판에 바닷물이 들어와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명 검색='1' 검색어='새보둑'>새보둑</지명>이 만들어지면서 새로 농토가 생겨난 것이다. 이게 <지명 검색='1' 검색어='번개들'>번개들</지명>이다.</문단> <문단>섬말이 조선시대 후기에서야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을 보면 이 번개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후 대장 큰말 앞으로 지나가는 동부간선수로가 만들어졌어도 <지명 검색='1' 검색어='새보둑'>새보둑</지명>은 그대로 남았고 <지명 검색='1' 검색어='번개들'>번개들</지명>도 그대로 남았다.</문단>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새보둑'>새보둑</지명>이 만들어진 뒤에는 들이 아주 넓어졌지만, 그 전에는 개별적으로 둑을 막아 농지로 만들었다.<지명 검색='0' 검색어=''>큰말</지명>에서 <지명 검색='1' 검색어='섬말'>섬말</지명>까지의 들을 말하며,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논농사를 경작하고 있다.</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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