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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0970
영어공식명칭 Sikgol|Sikgol Valley
이칭/별칭 식곡(植谷),식곡(息谷),시곡(蒔谷),은행단지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식골 -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해당 지역 소재지 식골 -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성격 골짜기

[정의]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있는 골짜기.

[개설]

식골은 식곡(植谷), 식곡(息谷), 시곡(蒔谷), 은행단지 등으로도 불린다.

[명칭 유래]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 부평군 하오정면 산곡명(山谷名) 조에는 고리동의 후곡(後谷)[뒤ㅅ골], 능곡(陵谷)[능ㅅ골], 강상곡(綱常谷)[강상골]과 함께 식곡(植谷)[식골]으로 조사되어 있다. 이는 지형이나 생김새에 의한 자연적인 작명보다는 특정한 의미에 중점을 둔 흔적이 역력하다. 『지명조사철』[1959]에는 강장굴[康莊洞]에 대해 “약 500년 전에 변씨 선조의 직함이 공장공이였는데 오래 내려오는 동안에 공이 변하여 강으로 부르게 되어 강장굴이 되었음”이라고 하였다. 최현수의 『부천사연구』1[1992]에서는 강장골에 대하여 “『밀양변씨 대동보』에는 강상[康莊]의 표기를 처음 강장곡(康莊谷)이라 하였다가 강상(康上)골로 변했다고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조선지지자료』에는 강상곡(綱常谷)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하였다. 즉 ‘강상곡’을 변종인(卞宗仁)[1433~1500]의 시호인 공장(恭莊)에서 변한 것으로 보았다. 즉 강상곡이 강장곡으로 변한 것이다. 최현수는 뒤이어 능곡과 뒤골[後谷]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만 정작 식골 항목은 없다.

양경직은 『고강동·성곡동 마을지』[2015]에서 “본래는 공장곡(恭莊谷)이다. 다만 『조선지지자료』에 표기한 ‘강상골’은 ‘강장골[康莊洞]’에 대하여 언어의 변화와 아울러 의미를 좋게 하기 위하여 견강부회한 지명으로 보인다.”라고 하였다. 능골변종인의 신도비가 있는 부근 지역이다. 왕릉은 아니지만 정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관리의 묘라 붙인 지명이라고 하였다. 이곳에는 변종인 외에도 변삼근변영만·변영태·변영로 등의 삼변(三卞) 묘가 있다.

최현수는 『부천문화의 재발견』[1996]에서 식골을 시곡(蒔谷)으로 표기하고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한도훈의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2001]에는 식골[息谷]에 대해 “경인고속도로로 인해 골짜기의 중간이 잘려 골짜기의 모습을 상실했지만 아주 큰 골짜기였다. 한자로 ‘식곡(息谷)’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숨쉬는 골짜기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감[枾]이 시간이 흐르면서 식(息), 식(植), 시(蒔)로 쓰였다고 하였다. 이어서 감골을 ᄀᆞᆷ골로, 삼한시대 족장의 신성한 골짜기로 확대 추론하고 있다.

양경직은 『고강동·성곡동 마을지』[2015]에서, “식골, 안산은 은행단지로 불리는 지역이다. 은행단지를 거쳐 고강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짜기이다. 곰달래고개 너머 은행나무단지에서부터 고리울삼거리까지의 긴 골짜기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 분명히 ‘식곡(植谷)’으로 표기했는데 ‘시곡’이나 ‘식곡(息谷)’으로 달리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蒔)[모종, 심다]와 식(植)[심다]은 의미가 같다. 그러나 식(息)[숨쉬다, 휴식]은 다르다. 식(植) 자에는 ‘심다, 재목, 붇다, 뜻[志]’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결국 식곡(植谷)[식골]이란 말은 신성한 조상들의 능곡을 중심으로 나무가 우거진 산을 의미하면서 선조들을 잘 받들면서 후손들의 번창을 도모하려는, 유교적 덕목인 삼강오륜에 힘쓰는 한 가문[밀양변씨]의 지역적 특성을 강조한 작명이라고 보는 것도 가능하다.

[자연환경]

식골호랑바위산[虎巖山]에서 출발하여 은행단지를 지나 고강선사유적근린공원 아래 고강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말한다. 1969년 경인고속국도가 개통되면서 중간이 헐렸지만 큰 골짜기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1.02 식골 <참고문헌> <문헌><서명 검색어='조선지지자료'>『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서명>(<출판사항>조선총독부, 1919</출판사항>)</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 문화의 재발견'>『부천 문화의 재발견』</서명>(<출판사항>부천문화원, 1996</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2010.12.20 식골 1)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봉배산'>봉배산</지명>에서 시작해서 <지명 검색='1' 검색어='은행단지'>은행단지</지명>를 거쳐 <지명 검색='1' 검색어='명산'>명산</지명> 아래 <기관 검색='1' 검색어='고강초등학교'>고강초등학교</기관>로 이어지는 골짜기이다. 현재는 <지명 검색='1' 검색어='경인고속국도'>경인고속국도</지명>를 내면서 골짜기를 깊게 파내 길을 만들어 위쪽은 <지명 검색='1' 검색어='은행단지'>은행단지</지명>로 만들었고, <지명 검색='1' 검색어='은행단지'>은행단지</지명> 위에는 약수터가 있다. 그리고 바로 남쪽 위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고리울'>고리울</지명> 선사유적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경인고속국도'>경인고속국도</지명>로 인해 골짜기의 중간이 잘려나가 예전의 모습은 변했지만 아주 큰 골짜기였다.</문단> --> <문단><지명 검색='1' 검색어='봉배산'>봉배산</지명> 북쪽에서 시작해서 <지명 검색='1' 검색어='은행단지'>은행단지</지명>를 거쳐 <지명 검색='1' 검색어='봉배산'>봉배산</지명> 아래 <기관 검색='1' 검색어='고강초등학교'>고강초등학교</기관>로 이어지는 골짜기이다. 현재는 <지명 검색='1' 검색어='경인고속국도'>경인고속국도</지명>를 내면서 골짜기를 깊게 파내 길을 만들어 위쪽은 <지명 검색='1' 검색어='은행단지'>은행단지</지명>로 만들었고, <지명 검색='1' 검색어='은행단지'>은행단지</지명> 위에는 약수터가 있다. 그리고 바로 남쪽 위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고리울'>고리울</지명> 선사유적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지명 검색='1' 검색어='경인고속국도'>경인고속국도</지명>로 인해 골짜기의 중간이 잘려나가 예전의 모습은 변했지만 아주 큰 골짜기였다.</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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