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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흥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1091
한자 廉興邦
영어음역 Yeom Heungb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부천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강옥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기도 파주시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서원[혹은 봉성]
대표관직 좌대언

[정의]

고려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서원(瑞原)[혹은 봉성: 현 경기도 파주]. 정당문학 염신약(廉臣若)의 후손으로, 고조부는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으로 치사한 염승익(廉承益)이고, 조부는 안남부사를 지냈던 염세충(廉世忠)이다. 아버지는 공민왕 때 재상을 지냈던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이며, 어머니는 중찬(中贊) 조인규(趙仁規)의 딸이다.

[활동사항]

염흥방공민왕 때 장원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좌대언(左代言)에 올랐으며, 부재지주(不在地主)로서 부천 지역에 농장을 소유하였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따르면, 우왕염흥방의 노비와 이림(李林)의 사위로서 판밀직이라는 고위벼슬을 지낸 최렴(崔濂)의 노비들이 부평부에 거주하였다. 이들 노비들은 주인의 농장을 경작, 또는 관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부평부에서 이들 노비들을 군사로 뽑기 위해 향리를 파견하자, 반항하며 향리를 구타하여 생명을 위독하게 하였다. 또 지방관이 직접 4도도지휘사(四道都指揮使)가 발급한 징병영장을 가지고 현장에 나갔음에도, 그마저 구타하여 조정에까지 보고가 되어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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