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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01171
한자 韓準墓
영어의미역 Tomb of Han Ju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 산 3-23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견수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건립시기/일시 조선 중기
관련인물 한준|완산최씨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2월 5일 - 한준 묘와 신도비 부천시 향토문화재 제3호로 지정
소유지 주소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 산3-23
소유자 청주한씨 종중

[정의]

경기도 부천시 계수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한준의 묘.

[개설]

한준(韓準)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공칙(公則)이며, 호는 남강(南岡)이다. 아버지는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한수경(韓守慶)이고, 어머니는 진주유씨(晉州柳氏)이며,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완산최씨(完山崔氏)이다. 1566년(명종 21)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합격하여 예문관에 등용되었다. 예조좌랑(禮曹佐郞)을 거쳐 호조참판(戶曹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1588년(선조 21)에 성절사(聖節使)로 명에 다녀와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가 되었다. 이듬해에 정여립(鄭汝立) 모반 사건을 알리는 「고변서(告變書)」를 조정에 올린 공으로 1590년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이 되었고, 좌참찬(左參贊)에 올라 청천군(淸川君)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때 호조판서(戶曹判書),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에 전임되었고, 1595년 사은겸주청사(謝恩兼奏請使)로 다시 명에 다녀왔다. 글씨를 잘 써서 사자관(寫字官)을 지냈고, 광주(廣州)의 우언겸묘표(禹彦兼墓表)를 썼다. 1601년(선조 34)에 사망하였고 평소에 근면, 검소하여 장사를 치를 돈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시호는 정익(靖翼)이다.

한준 묘는 신도비와 함께 1998년 2월 5일 부천시 향토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부천과 시흥의 경계 지점인 할미산의 지산들 중 함박산 남쪽면 청주한씨 묘역에 위치한다.

[형태]

한준 묘는 정부인 완산최씨와 쌍분으로 봉분은 호석을 두르고, 묘역은 1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최근에 세워진 묘비의 비신은 가로 50㎝, 세로 19㎝, 높이 113㎝이고,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비좌는 높이 32㎝, 너비 96㎝, 두께 55㎝의 규모이다. 묘에서 서남쪽으로 50여m 떨어진 곳에 신도비가 남아 있다. 묘비는 월두형이고, 비좌의 상면에는 복련문이, 측면에는 안상(眼象)이 표현되어 있다. 문인석 1쌍은 금관조복 차림으로 높이는 각각 159㎝이며, 망주석의 높이는 각각 164㎝이다. 묘비는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의의와 평가]

후대의 개수로 인하여 약간의 변형이 있었으나, 봉분과 묘비, 문인석, 망주석, 상석, 향로석 등 사대부가 분묘의 기본 요소를 어느 정도 갖추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11.26 문화재 지정 사항 반영 문화재 지정 사항 반영: 부천시 향토문화재 제3호로 지정(1998.2.5.), 주소 수정: 계수동 산3-15->계수동 산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