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2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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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希雍 |
영어음역 | Yi Huiong |
이칭/별칭 | 중우(仲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남달우 |
조선 중기 부평부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중우(仲友). 아버지는 이수영(李壽嬰)이고, 어머니는 이영홍(李永弘)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이함장(李諴長), 증조할아버지는 이사관(李士寬)이다.
이희옹은 1495년(연산군 1) 사마시 진사과를 거쳐, 1504년(연산군 10) 별시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로 재직 중 중종반정(中宗反正)을 도운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1509년(중종 4) 성절사(聖節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1516년(중종 11) 남원부사로 파견되었고, 1518년 장단부사(長湍府使)로 재직 중 반정(反正) 때의 녹공(錄功)을 공훈 기록에서 없애야 한다는 탄핵을 받았다. 1520년(중종 15) 9월 부평부사로 부임하였고, 1525년(중종 20) 임기를 채우고 교체되었다. 같은 해 사간으로 재직하다 언관(言官)에 합당치 못하다는 탄핵으로 체직되었다.
1530년 순천부사(順天府使)로 재임하면서 피폐한 고을을 정상화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1537년 찰리사(察理使)에 이어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에 제수되었다. 그 후 강원도 관찰사, 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중종 36) 천추사(千秋使)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