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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장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30004
한자 彫刻匠
이칭/별칭 금속 조각장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부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7년 12월 29일 - 국가 무형문화재 제35호 조각장
현 주소 조각장 - 경기도 부천시

[정의]

경기도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금속 재료를 활용하여 전통 기법으로 각종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과 그 활동.

[개설]

금속 부문 조각장(彫刻匠)은 금은 등을 사용하여 형태를 만들거나 금속의 표면을 두드리거나 깎거나 용봉 등의 문양을 새겨 아름답게 장식하는 기능을 가진 전통 금속 공예 장인의 일종이다. 이와 같은 작업은 전통적으로 조이(彫伊)라고 불렀으며, 금·은·동 따위의 금속 제품에 각종 무늬를 쪼아 새기는 일을 하는 장인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경공장과 외공장에 조각장이 소속되어 있었다.

경공장으로서 조각장은 병조에 2명, 상의원에 4명, 교서관에 8명, 선공감에 10명 등 모두 24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병조의 조각장은 국방에 필요한 무기류를 만들었고, 상의원 소속의 조각장은 왕실에서 사용하는 화려한 장신구를 만들었으며, 교서관에서는 활자를 만들었다.

지방의 장공인으로서 조각장은 충청도에 1명, 영안도에 1명, 모두 2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에 조각장은 조이장(彫伊匠)이라고도 불렀고, 그밖에 은을 다루어 은그릇이나 은 공예품을 만들면 은장(銀匠), 은실을 박아 넣으면 입사장(入絲匠)이라고도 불렀다. 개항기 조선 왕조가 붕괴됨에 따라 장인들은 광교천 변에 모여 은방도가를 열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이왕직 미술품 제작소의 조각부에서 그 기술을 전승하였다.

해방 이후 1970년 7월 22일 김정섭(金鼎燮)[1899~1970]이, 그의 사후 김철주(金喆周)[1933~2015]가 국가 무형문화재 제35호 조각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2017년 12월 29일 곽홍찬이 또한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지방 무형문화재로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은공장 김원택 기능보유자와 이정훈[1935년생] 은세공 기능보유자가 인정되어 있다.

[가계 및 전승]

조각장  곽홍찬은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3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는 전통 장인이다. 그의 조부인 곽순복[1894~1962]은 백동연죽을 만들거나 금속에 조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조부에게 기능을 전수받은 부친 곽상진[1928~1997]과 백부 곽상덕[1923~1993] 또한 금은세공과 금속 조각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제 강점기부터 함께 가업을 이었다.

곽홍찬은 금속장인으로 활동하던 조부와 백부 및 부친의 영향을 받아 김원택[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은공장]과 입사기능 전승자였던 박기원으로부터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은공예기능과 입사기능을 전수 받았다. 또한 일제 강점기부터 왕실 공예품을 제작하던 이왕가 미술품 제작소에서 금은세공 조각장으로 활동하였던 곽명수와 윤명덕에게 조각 기능과 금은세공 기능을 전수받았다.

[기술 내용]

조각장 이 사용하는 주재료는 금은이다. 금속 세공 기술은 전통적으로 왕실용품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고부조 육각(肉刻)이나 쪼이[彫伊] 기술 및 부금(付金) 기법 등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작품의 형태는 고려 귀족이 애호한 불교 공예품이나 조선 왕실 여인들이 착용한 장신구 등 유물의 형태를 복원하거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제작하기도 한다. 문양은 용이나 봉황처럼 왕실을 상징하거나 장수와 다복 등 길상적 의미를 지닌 전통 문양을 주로 활용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11.22 문화재 지정에 따른 현행화 2017.12.29 곽홍찬 국가무형문화재 제35호 조각장 기능보유자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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