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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에 젖은 신주단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A030101
지역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정지

“시장에 물이 참시로 옛날에 살던 얘기 한다믄 나도 책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어요.”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한 정희순 할머니(82세). 여자 혼자의 몸으로 부천에 온 지 벌써 43년째가 되신단다. 당시 육각정[현재 활주로 공원]에서 사글세 2만원씩 주고 살았다는 할머니는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기억해냈다.

“내가 39(살)에 부천 왔는디, 지금 83살이 됭께. 벌써 40년이 넘었지. 그걸 왜 안 잊어 버리냐면 내 혼자 몸뚱이로 올라와서 식당이라도 들어갈랑께, 그 때 식당주인 아줌마 나이가 아홉수더라구. 그래, 나도 아홉수고 아줌마도 아홉수라 만나면 안 좋다고 해서 내가 한 살 줄이고 왔어요. 옛날 미신이 그러요.”(정희순, 심곡본동 주민, 82세)

아홉수의 미신 때문에 나이를 속이고 식당에 들어갔다는 정희순 할머니의 경험담에 주위에 있던 할머니들이 함박웃음을 터트리신다. 하지만 힘들었던 그 시절이 다시 떠오르는지 할머니들의 회한 어린 한탄이 그 뒤를 이었다. 3, 40년 전의 깊은구지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어서 곡식이나 과수를 재배할 땅이 없는 사람은 일자리 찾기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여기는 아주 깡시골 같았어요. 본동에도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고 가시덤불도 무성했어요. 약수터 길목도 좁았거든요. 그래 길을 다니믄요, 뱀이 쏙쏙 들어가고 했어요. 자유시장도 시장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쬐깐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요 앞에 노점 야채시장을 더 많이 이용했죠.”(정희순, 심곡본동 주민, 82세)

정희순 할머니는 옛 생활을 회상하면서 깊은구지는 땅이 질퍽질퍽하고 물이 벙벙 차올라서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는 증언도 덧붙였다. 장마철이 되면 가옥에 빗물이 차고 도랑에 물이 불어서 사람이 떠내려가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 물이 참시로 옛날에 살던 얘기 한다믄 나도 책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어요. 언젠가는 방안에 물이 철렁철렁 들어오는데 나는 애를 임신해가지고 그러고 있었거든요. 이제 어떡하나 했는데 영감님이 회사 갔다가 먼데서 뛰어 오드라구. 남편이 나를 끌어서 둑에다 앉히고 그랬는데. 옛날에 시어머니가 구멍 뚫린 돈(엽전) 12개를 당신 주머니에 담아서 줬거든요. 그래, 내가 주머니를 항상 조상님 모시듯이 모셨거든요. 그래, 그걸 내내 간수하고 있는데 그 때 물 참시로 그걸 내가 잃어버렸어요. 그래 내가 항시 가슴이 아파요.”(정희순 씨, 심곡본동 주민, 82세)

정희순 할머니는 시어머니에게 받은 귀중한 주머니를 잃어버린 물난리를 회상하면서 목이 메는지 말씀을 더 잇지 못했다. 복숭아, 포도 농사로 전국에 명성을 날린 깊은구지였지만 도시개발이 이루어지기 이전부터 정착한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물음에 손사래부터 치시는 할머니들, 하지만 이제 그 분들이 깊은 주름을 지으면서 터를 닦아놓은 깊은구지는 부천의 시장 중심지를 자처하며 크게 번성하고 있다.

[정보제공]

  • •  정희순(심곡본동 주민, 8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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