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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A030103
지역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심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정지

“옛날엔 농사꾼들이 점심을 먹고 잠자고 그러던 덴데 몇 번씩 불나고 벼락 맞는 바람에 죽었지.”

심곡2동 깊은구지 도당나무길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노목이 하나 있다. 이제는 수령을 다하여 속 빈 밑둥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지만 아직도 동네사람들은 한때 마을을 수호한 고목나무에 대한 예우로 2년마다 당굿을 지내고 있다.

원래 마을에 있던 노목은 모두 셋으로, 할아버지나무, 할머니나무, 아들 나무 또는 손자 나무로 불리는 노목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매년 10월 10일에는 심곡 본1동과 소사 본1동 지역에서는 지역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마을의 안녕과 평온을 바라는 기원제가 열린다. 심곡 본1동 깊은구지 도당제는 지역 주민 및 지역의 무병장수와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본토의 주민들이 주도가 되어 제례행사로 유지해 오다가 지난 2003년도부터 시의 관심과 예산지원을 토대로 주민들의 폭넓은 관심과 참여 속에 축제로 승화된 기원제로 열리고 있다. 깊은구지 도당제는 성주산 제1약수터에서 산신제를 시작으로 목신제, 대동제, 시가행진, 아래 고목나무에서 마을잔치로 이어지며 저녁 늦게까지 진행된다. 하지만 정작 고목나무에 대한 역사를 아는 이는 마을에 별로 없었다.

고목나무 전문가로 동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한 김연재 할아버지가(80세) 거의 유일하게 도당나무의 변천사를 알고 계셨다.

“옛날 노인들은 다 돌아가시고 이제 나 하나 남았어요. 역사(500~700년 추정)가 있어서인지 나무가 무진장 컸었는데 아이들이 놀다가 불이 나서 세 번을 껐어요. 옛날엔 농사꾼들이 점심을 먹고 와서 잠자고 그러던 덴데 몇 번씩 불이 나고 벼락을 맞는 바람에 죽었지.”(김연재, 심곡2동 주민, 80세)

김연재 할아버지는 본래 충청북도 청주가 고향이지만 부천에 정착한 지 70여 년이 넘은 토박이다. 경인철도가 운행하던 시절, 십 리나 떨어진 부평동국민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 8시 기차를 탔다고 하신다.

할아버지께서 정식으로 고목나무를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1971년도 지금의 집을 완성하면서부터였다는데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집을 지을 당시의 깊은구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었다.

“정말 지금 모습하고는 딴판이었어요. 그냥 그때에는 이런 도로도 없었고 다 샛길이고 다 논밭이고 그랬어요. 근데 우리 남편이 봉사정신이 있어서 나무도 사랑하고 땅도 사랑하고 했거든요. 그래서 라면을 끓여 먹어가면서 제일 약수터 초창기에 개간 다니고 했어요. 덕분에 시에서 표창장도 여러 번 받고 그랬죠.”

할머니는 집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표창장을 가리켰다. 언뜻 보기에도 스무 개는 되어 보이는 표창장이 할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이력을 말해 주었다. 현재 김연재 할아버지는 노령의 연세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상태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의 제일 어른으로 토지를 개간하고 당굿을 주재하는 일에 앞장을 섰다. 덕분에 미신을 기피하는 동네 사람들의 반대를 무마시키고 현재의 고목나무 책임자(최상철, 60세)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할 수 있었다고.

“동네 노인들이 살아있을 땐 해마다 고사를 지냈는데 이제 나무도 죽고 경제적인 문제도 있어서 2년마다 한 번씩 당고사를 지내요. 동네에서도 얼마씩 걷고 시에서도 지원해 주는데 당굿을 주재하던 양반이 돌아가신 후부터는 내가 했거든요. 지금은 젊은 사람들한테 넘겼는데 아주 잘해요.”(김연재, 심곡2동 주민, 80세)

현재 당굿을 받는 나무는 아들(또는 손자) 나무이다. 할아버지 나무는 소실되었고 할머니 나무는 노목이 되어 쓰러졌지만 이를 보호하고자 철망을 쳐 놓은 상태이다. 한때는 동네처녀들이 큰 그네를 메달아 뛰었을 정도로 거목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고목나무가 마지막으로 불타오르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소방차를 불러다가 나뭇가지 위에 올라서 막바로 불을 껐어요. 근데 물을 소방차로 아홉 차를 뿌렸는데도 안 꺼져서 고생했지. 나무가 다 썩어 가지고 담뱃불만 조금 붙여도 그냥 빨아들이더라구요.”(김연재, 심곡2동 주민, 80세)

영원히 마을을 수호할 것 같았던 듬직한 세 고목나무. 그리고 그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예우를 다해 모셔온 옛 사람들. 지금은 비록 대부분이 병들고, 늙고, 죽어 없어졌지만 한 때는 부천의 하늘을 향해 무성한 잎을 뻗어 올렸을 고목나무의 빈자리는 매우 컸다.

하지만 마을의 쉼터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고목나무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이들이 남아있는 한 그 굳건한 뿌리는 깊은구지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정보제공]

  • •  김연재(심곡2동 주민, 8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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