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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B020302
지역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작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택희

“서리한 것을 가지고 어디 가서 파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도둑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옛날 경인선을 달려온 열차가 소사역에 들어서면 차창 밖에서는 으레 행상들이 알이 굵고 먹음직한 복숭아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치켜들며 큰 소리로 ‘복숭아 사려’를 외쳤다. 입안에 가득 고여 오는 상쾌한 단맛, 부드러운 육질이 주는 미각의 유혹을 못 이겨 승객들은 너도나도 복숭아를 샀고, 그렇게 경인선을 오가며 입맛에 친숙해진 소사 복숭아는 어느새 소사를 전국 방방곡곡에 알리는 특산물이 되었다. 물론 복숭아 산지가 소사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서울 근교와 개성, 경북 의성 등에도 제법 규모가 큰 산지가 있었지만 한 그루에 300여 개나 되는 풍성한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곳은 토질과 기후가 적합한 소사뿐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언제부터 소사에서 복숭아를 생산했을까? 1930년 일본인 사토가 펴낸 『조선의 특산-어디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책을 보면 그 원조는 경인선 인천역장을 지낸 ‘다케하라’였다. 1893년 그가 복숭아 재배에 성공하자 그를 아는 인천 사람들이 재배에 나서기 시작해 1937년경에는 소사역을 중심으로 해 소사면, 오정면, 소래면 등 70여 곳에 과수원이 들어섰고 규모도 150여 정보에 달했다고 한다.

소사 복숭아 전성기는 1930년대였다. 당시의 복숭아는 전국의 그 어떤 과일보다 뛰어난 맛과 향을 자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세심한 공을 들여도 표면에 상처가 나기 일쑤여서 등급을 매겨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포장도 상등품에는 ‘소사 명산’이라는 빨간색 문자와 복숭아 도안이 인쇄돼 있는 부드러운 광택 파라핀 종이를 썼고, 3등품 이하에는 헌 잡지, 휴지, 신문지 등을 사용하였다. 이 복숭아들은 멀리 만주의 하얼빈, 신경, 안동, 봉천까지 보내졌다고 하는데, 최대의 소비지는 역시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울이었고 그 다음이 인천이었다.

이웃 인천 상인들은 직접 우마차로 이를 운반해 신포 시장이나 참외전 거리에서 큰 것은 개당 1전 4리, 작은 것은 1전 2리에 팔아 재미를 보았다. 광복 후에도 ‘소사 복숭아’는 명성을 잃지 않았다. 가을철이면 경향 각지에서 소사 과수원을 찾아가 복숭아와 더불어 포도와 딸기 같은 제철 과일을 즐기던 이색적인 ‘과일 먹기’ 풍속도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다.

이 시절 아이들은 복숭아 서리로 배고픔을 달래곤 했다. 그런 만큼 그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서리에 대해 많은 기억을 갖고 있다. 가끔 서리를 하다 발각되면 벌을 톡톡히 받기도 했다.

“지금이야 서리하다가 걸리면 벌금도 엄청 물고 처벌받지만 당시에는 그런 각박한 마음이 아니어서 서리를 무척 했었지. 그러다가 잡게 되면 경찰서까지는 가지 않고 따귀 한 대 때리거나 벌주고 보내줬지. 나이 좀 있으면 때리고 많이 어리면 손들고 서 있는 벌 주다가보내구.”(민동훈·윤용보·신재칠, 오정초등학교 25회 동창, 1947년생)

하지만 주로 서리하는 사람들은 중학교 아래까지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 거의 고등학생이거나 놀랍게도 20~30대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자루째 들고 가서 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는데, 배고픈 시절이었던 만큼 과수원 주인도 대부분은 묵인하였고, 처벌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사실 서리를 해도 그것 그냥 혼자먹지 않았거든. 다 가지고 가서 이곳저곳 나눠서 먹고 그랬으니까. 뭐 당시에는 못 먹던 시절이니까 이해했지. 서리한 것을 가지고 어디 가서 파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도둑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러다가 1970년대 조금 지나서일까, 서리하다 잡히면 무조건 경찰서로 가더라구. 이 근처에 오정파출소라고 있었는데 운 나쁘게 잡히면 바로 파출소로 끌려갔지요.”(민동훈·윤용보·신재칠, 오정초등학교 25회 동창, 1947년생)

지금은 서리를 하는 광경도, 서리꾼의 고픈 배를 이해해주던 과수원 주인도 찾기 힘들지만, 그때의 소박하고 훈훈했던 기억은 아직도 작동 사람들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정보제공]

  • •  민경남(부천교육박물관장, 1941년생)
  • •  민동훈·윤용보·신재칠(오정초등학교 25회 동창, 194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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