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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와 사냥꾼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B030206
지역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택희

“동네마다 포수가 계셔가지고 계양산에서 노루가 뛰었다고 산으로 잡으러 가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바람이 부는 날에는 작동마을에 가고 싶어진다. 바람이 불면 작동의 보리밭 초록물결이 더욱 일렁인다. 사실 보리밭에 대한 느낌과 의미는 세대별로 다르다. 현재를 사는 아이들에게 보리밭은 그저 신기한 풍경쯤으로 여겨질 법도 하나, 적어도 30년 전 보릿고개 시절을 겪은 세대들에게 넘실대는 청보리의 모습이 결코 추억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고개가 ‘보릿고개’라 말했던 우리네 할아버지에게도, 배고픔에 슬그머니 보리 서리를 해서 불에 구워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리의 부모님 또한 지금의 풍성한 생활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됨은 어쩌면 당연지사일 것이다.

겨울이 지나 양식은 바닥나고, 보리는 아직 익지 않아 초록색인 채 논밭에서 자라고 있고, 농사철이 되어 일은 바빠지는데 기운은 없고, 연중 가장 어려웠던 계절, 바로 보릿고개가 이 시절이었다. 그 때 정식으로 사냥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을마다 대표적인 사냥꾼들이 있었다. 이 곳 송내동 마을에도 엽총을 가지고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마을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동네마다 포수가 계셔가지고 계양산에서 노루가 뛰었다고 산으로 잡으러 가셨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있지. 생업으로 하신 것은 아니고 취미로다 총을 가지고 다니시면서 사냥을 하신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 보면요. 멧돼지도 잡아서 동네에 드리고 그랬지. …… 있는 사람들이 이 동네에도 한 서너 명 계셨지.”(박성규, 지역 토박이, 1947년생) (신동명, 지역 토박이, 1954년생)

당시의 사냥꾼들은 사냥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생업은 따로 있으면서 사냥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렇기에 사냥을 해서 소득이 있으면 이를 가져다가 마을행사가 있거나 하면 나눠먹는 나눔의 정을 쌓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정보제공]

  • •  박성규(지역 토박이, 1947년생)
  • •  신동명(지역 토박이, 1954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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