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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삼수도 기본, 초등학교 입학시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D030205
지역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웅규

“학교를 떨어지면 천자문 배우는 애들도 있고, 일을 하는 애들도 있는데, 대부분은 남아서 집안일들을 많이 도왔지.”

지금 우리나라는 의무교육이 정착되어 있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들이 향상되면서 얼마든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비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립교육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예전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졌지만, 적어도 일정 수준까지는 의무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있다. 또 일정 수준까지는 평준화가 이루어져서 특별한 시험 없이 동등하게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어려운 생활형편으로 인해 제 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상당히 적었으며, 학생 간 수준차도 매우 컸기 때문에 초등학교부터 입학시험이 존재했다. 즉 어린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고사가 치러졌던 것이다. 지금이야 초등학교는 특별한 시험 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박병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만해도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봐야 했다.

“초등학교를 못 다닌 사람들도 많았어. 초등학교부터가 시험제도였는데 우리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에 시험을 보러 마을에서 12, 13명씩 갔거든. 그런데 7, 8명밖에 붙지 못했어. 그 해 떨어진 사람들은 그 이듬해 또 시험을 봐야했지.”(박병설, 지역 원로, 1929년생)

당시에는 가정형편이나 개인별 학습수준 등의 요인들에 따라 아이들의 실력 차가 많이 났던 시기였다. 이로 인해 입학시험에 떨어져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다. 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은 1년이든 2년이든 기다려서 재시험을 치르고 학교에 들어가야만 했다.

“학교를 떨어지면 천자문 배우는 애들도 있고, 일을 하는 애들도 있었어요. 근데 거의가 집에서 학교도 떨어졌는데 일이나 하라고 퉁박을 줘서 주로 집안일들을 많이 도왔지.”(박병설, 지역 원로, 1929년생)

당시만 하더라도 교육에 대한 생각보다는 당장 먹고살기 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했기 때문에, 입학시험에 떨어지면 집안일을 돕게 하는 가정이 많았다. 지금이야 시대가 좋아져서 어릴 적부터 노동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어린이들의 노동까지 필요할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집도 많이 있었다. 자신의 세대에서는 마음 놓고 공부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힘든 삶을 밑거름으로 자식들을 교육시켜온 분들이 바로 지금의 부모님들이다. 변변한 교육기관 하나 없던 솔안말이 부천을 대표하는 교육지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이러한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제공]

  • •  박병설(지역 원로, 192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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