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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교통의 전초기지 송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6D030301
지역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송내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웅규

“6·25가 났을 때 내가 21살이었는데 26일 쯤 천둥치듯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래도 전쟁이 일어난 줄은 몰랐는데...”

한국전쟁 발발. 송내동에도 예외는 없이 전쟁을 알리는 큰 굉음이 일었고 이후 송내동에도 많은 군인들이 오고 가면서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생애 가장 충격적이었던 전쟁의 기억은 송내동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당시 젊은 청년이었던 박병설 할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이 등짐을 지고 끝도 없이 걸어가던 마을앞 개울이 생생하다고 하신다. 옛날에 전쟁이 나면 한 마을에서 산을 넘어서 다른 마을로 도망갔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되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지켜야 할 식솔들이 있으니까 급한 것만 가지고 산 속에 숨어 있다가 전쟁이 끝나면 내려오고 했던 것이다.

“6·25 났을 때 마을 주민 전부들 집에서 먹을 것 하구 입을 것들 사소한 몇 가지 꾸려가지고 산 넘어가서 하룻밤 자고 왔어. 그러니까 그날 저녁에 벌써 탱크가 들어오고, 북에서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이제 살기 좋아졌으니 집에 가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갔지.”(박병설, 지역 원로, 1929년생)

송내동은 지금도 경인철도와 경인국도가 서울과 인천을 연결해주고 있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에도 서울과 인천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따라서 당시 한국전쟁 때도 많은 군인들이 이곳을 지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내가 6·25만 얘기하면 등등하네. 내가 국가유공자인데 6·25가 났을 때 내가 21살이었는데, 26일 쯤 천둥치듯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래도 전쟁이 일어난 줄은 몰랐는데, 저녁에 라디오를 들으니까 전쟁이 일어난 게 나오더라고 그땐 TV도 없었거든. 그래 사흘 만에 북에서 인민군들이 입성을 하더라고. 27일 날 여기로 들어왔어. 처음에 왔을 때 걔들이 철두철미한 교육을 받아서 민간인이나 물자들을 해치질 않았어. 그냥 도로로만 가. 민간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했어. 그래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봤더니, 석암리로 간다고 하더라고. 인천에 있는 석바위가 석암리야. 석암리로 해서 수원으로 가는 길이 있었는데 그리로 해서 간다는 거야.”(박병설, 지역 원로, 1929년생)

부천을 지나가는 경인국도와 경인철도는 서울 등 대도시로의 인접성을 높게 하여 부천의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남북의 군대가 이동하는 경로가 되어 전쟁의 화마를 피할 수 없었다.

[정보제공]

  • •  박병설(지역 원로, 1929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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